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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평점 :
북유럽 스릴러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는 요 네스뵈의 소설이다. 가장 잘 나가는 작가답게 사진발도 잘 받는다. ‘이런 작품을 내기에는 너무 동안 아니십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처음 만나본 그의 작품은 굉장하다. 노르웨이에서만 150만부 팔렸고, 에드거 상 최종후보에도 오른 전력이 있다. 록 밴드에서 보컬로도 활동한다고 하니, 요 작가. 심하게 멋있다.
책 뒷면에 보면, ‘직업 사냥꾼, 그림 사냥꾼, 사람 사냥꾼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라는 문구가 가장 윗줄에 쓰여 있다. 주인공의 신분과 사건연결을 순차적이고도 가장 핵심적으로 전달하는 문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굵직한 사건 하나를 중심으로 계속 꼬여내며 진행되지만, 나는 책의 내용을 저 세 가지의 측면에서 정리하고 싶다.
주인공은 헤드헌터다. 그 중에서도 굴지 기업의 임원직 인물들을 주로 추천하는 자리에 있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은 사람을 면접할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질문을 하고, 어느 정도까지 사람을 파악해 낼 수 있으며, 그 면접에서 노리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상세히 말해 준다.
주인공은 머리가 제대로 비상하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줄 안다. 이렇게 자신감 넘치고 영리한 캐릭터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낯선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개방적이고 순수한 미소, 소위 말하는 ‘천박한’ 미소가 아니었다. 나의 미소는 정중하지만 온기가 반밖에 없는, 그러니까 면접 기술을 다루는 전문성 일명 ‘면접관의 전문성과 객관성 그리고 분석적 접근’을 보여 주는 미소다. 그렇다. 이렇게 감정 표출을 자제하는 것이야 말로 지원자들이 면접관의 실력을 믿게 만드는 비결이다. (p. 12)
이런 주인공에게도 콤플렉스가 있다. 168센티미터. 부인 디아나가 너무나 완벽해서 오는 불안감이 그를 지배한다. 임신을 했을 때 중절수술을 강요했는데, 여러 가지 심리 언급에서 주인공은 부인 사랑에 대한 자존감이 부족함을 내비친다.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는 데 대한 보상으로 부인에게 화랑을 차려주며, 거대한 집을 선사하며 돈을 물 쓰듯 쓴다.
여기에 그림 사냥꾼이 된 이유가 있다.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그녀가 떠날 수 없는 재력을 갖추고서 아이를 가지고 싶은 것이다. 그 자신의 콤플렉스를 돈으로 보완하려는 생각. 안정적인 재정이 있다면 그녀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절박함을 가지고, 자신의 고객들 집에 있는 명화를 전문적으로 사냥한다.
루벤스*만 손에 넣으면 나는 비로소 디아나가 말한 사자, 맹수의 제왕 이 될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대체 불가능한 가장 말이다. 그렇다고 전에는 디아나가 나를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디아나라면 누려야 할 그런 안락한 둥지를 내 힘으로 만들고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내 약점을 보지 못하는 그녀의 희한한 눈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진짜 모습을, 내 전부를 봐도 괜찮았다. (p. 115)
*루벤스? 그의 고객이 된 그레베 씨의 집에 루벤스의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이라는 그림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 주인공이 그의 집에서 그림을 훔치는 와중에 아내와 그레베 씨의 불륜을 직감하는 단서를 얻는다. 그리고서 일이 꼬이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이제부터 진정한 사람 사냥꾼으로서의 엄청난 모험을 겪는다.
실상 소설의 재미는 본격적으로 이 부분부터이다. 그리고 저자가 얼마나 독자를 몸서리치게 만드는지, 소설의 내용을 몇 겹으로 베베 꼬아서 정신없게 만드는지 모른다. 반전의 반전은 마지막까지 독자의 진을 빼놓을 정도로 진행된다.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고 되뇔 정도로.
이 소설은 여러 가지의 재미를 담고 있다. 가히 상상초월인 소설이다. 사건 자체와 그 전개는 거칠고 투박하다. 주인공의 심리나 시선은 섬세한 필치로 그리고 있는 반면 그 외 인물들에게서는 풍기는 매력이 좀 덜했다. 주인공 위주로만 굴러가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느끼는 바, 알고 있는 것을 발설하는 모든 톤에서 농익은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고상하고 충실한 사람들은 종종 인간 중에서도 최악의 부류에게 조차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p. 249)
지독한 소설이었다. 특히 중반부에 주인공이 겪어나가는 죽음의 위기들 앞에서의 그의 행위들은 독자의 숨을 멎게도 만든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고, 이 소설을 두고는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을 만큼 아찔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