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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평점 :
올 여름, 재난이 속출하고 있다. 어제까지 중부폭우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있었고, 서울도심은 마비가 되었다. 올해는 전국이 폭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면산 일대가 초토화되었고, 춘천으로 자원봉사를 간 대학생 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폭우 때문에 재난이 일어나 사람들의 신음이 끊이지 않았던 그 날, 나는 아주 특이한 재난소설을 읽으며 방구석에서 혼자 신음했다.
나는 작가를 좀 우습게 봤다. 작가의 책을 읽을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라디오국 PD라는 이유와 책을 엄청난 속도로 발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냥 특정 출판사에 지분이 좀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자들의 리뷰에 작가에 대한 호평을 많이 보게 되면서 다시 생각했다. 그래서 블록버스터급이라고 소개하는 재난소설을 들었다. 기대가 높았을까? 허허, 전혀.
김혁이 있다. 프로산악인으로 히말라야 10개 산을 올랐고, 소희와 영준과 함께 낭가파르바트를 오르던 중 처남 영준을 잃었다. 부인과는 별거, 반지하방 얻어 혼자 사는데 딸 안나만 간간히 찾아온다. 혁의 처는 꽃집을 운영하는데, 이번에 123층짜리 시저스 타워에 입점하게 된다. 꽃집 종업원 민주는 훈남 의사 동호와 밀당을 하는데, 사실 그 건물은 동호 엄마가 지었고, 동호는 그 회사 문화재단이사장이 된다.
시저스 타워 오픈식이 끝나고, 밤행사에 불꽃이 터지는데 갑자기 건물이 통째로 땅밑으로 꺼진다. 스토핑 형태의 싱크홀. 추가 지반 붕괴위험에다 구조대 몇 명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구조작업이 지연되고, 며칠을 고심한 끝에 혁은 스스로 나선다. 정부의사에 반하여 경찰총책임자의 도움을 받아 동호와 소희 혁은 새벽에 건물 밑으로 들어가 구조작업을 한다. 그 안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얼마 없었고, 이 중에 설마 주인공이 또 죽어있었겠나. 중요한 점은 여기 연쇄살인범인 사이코패스가 있었고, 간사한 이기주의자가 있었다. 건물 안과 밖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저자가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 듯 보였다. 그러나 핵심만 남게 가지를 치면서 미련 없이 잘랐나보다. 보여줄 것만 딱 보여주고 그럴 듯하게 써내려간 전개다. 포커스가 고정되어 머무르지 않는다. 툭툭 돌아다니는데, 그게 저자 머릿속 같았다.
일반 독자들의 기대를 잘 읽고 있는 책인 것 같다. 너무 디테일한 설명은 피하고, 일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릴 때는 속도감 있게 흐른다. 인물들의 일반적 감정에 치우치지도 않고, 구조하는 작업에도 세세하지 않다. 작품을 통한 그의 메시지의 직접적인 비중이 크고, 책을 덮을 때는 그 전달사항만 남는 것 같기도 하다.
뭐, 블록버스터급은 아니다. 닥친 재난의 규모와 참사 현장을 소개하면서 헐리웃식 블록버스터로 어마어마하게 그려내고 있지 않으니까. 오히려 붕괴된 건물 안에서 사이코패스가 하는 혐오스러운 짓이 더 블록버스터라고 불릴만하다. 재밌게 읽었다. 일말의 감동도 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읽는다면 독자의 내면이 요동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