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나침반
미즈키 히로미 지음, 김윤수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은 한 여배우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그리 잘나가지 않는 배우인데, 영화에 캐스팅되어서 촬영 장소에 도착한다. 여기 이 지점, 배우와 감독이 만나서 얘기하고 하는 이 부분부터가 상당히 어려웠다. 도입 자체가 명확한 무언가를 내 던지지 않고, 미적지근하게 흐르고 있어서 소설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집중이 안 되었다.



액자식 전환구성이다. 주인공들의 고등학교 시절로 올라간다. 연극부에 환멸을 느낀 루미, 바타, 가나메. 다른 학교의 가난한 여학생 란을 섭외하여 따로 극단을 차리고, 안 쓰는 건물을 몰래 들어가 연습실로 삼는다. 그 연극단 이름이 ‘나침반’이다. 길거리공연을 시작해서 반응이 좋아지려는 시점에 알 수 없는 방해공작을 받는다.



연극대회에 참가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집안 반대에도 계속 연극을 하려는 란은 기획사 오디션을 본다. 하지만 정작 따라간 가나메가 오디션에 발탁된다. 그리고는 가나메에게 안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에 이른다. 범인은 바로 앞서 등장한 여배우이다. 그리고 책의 전개는 계속적으로 그 여배우가 누구인지를 좇아나간다.



사실 작가는 앞서 드문드문 힌트를 제공하지만, 독자는 애먼 데서 헤매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여배우의 촬영현장에서 범인의 행각을 낱낱이 밝혀낸다. 증거는 하나, 그래서 끼워 맞추기 형식의 대사처리로 급박히 사건의 전말을 넘겨버린다. 소설의 전체적인 비중은 16세 소녀들의 극단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나가기에, 사건 처리 과정에서 치밀하게 짜이지 않은 구성이 아쉽다. 그냥 아스크림 케이크 등장 하나로 모든 걸 추측해내니까.



작가의 문투가 인물의 심리를 그리는데 있어 너무 뚝뚝 끊긴다. 시점을 아주 애매하게 쓰고 있다. 읽는 사람으로서는 감정 공감에 많은 애를 먹는다. 또한 작가가 보여주는 인물의 감정과 실제로 인물의 마음속 외침 사이의 구별해 놓은 따옴표 등의 기호가 없어서 설명과 감정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독자의 알아서 구별해야 할 몫이 있었다.



그런 루미가 얄미웠다. 그리고 부러웠다.

루미는 천성적으로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지고 있어.

그런 루미가 만드는 폭풍우 속으로 휘말리는 건 분명 겁이 난다.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 바람을 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자신을 상상도 못할 곳으로 데려가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다. (p. 166)



가장 많이 남았던 구절은 란의 엄마가 란에게 훈계할 때 내뱉는 대사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동안 자신이 알던 상식이 뒤집어지는 일이 있어. 자신의 시야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돼. 너도 장차 그런 일이 많이 있을 거야. 그래서 젊을 때부터 한 가지 일에만 계속 얽매이면 손해라고. 더 많은 세상을 알고-.” (p. 178)



‘미스터리 살인’이라는 소재만 보고 남자들이 섣불리 집었다가는 기대와는 많은 격차를 보일 수도 있겠다. 워낙 소녀들의 ‘이러쿵저러쿵’이라서 그 시절 그 아이들의 배경과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어야만 끝까지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다. 용기 있는 소녀들의 강한 우정과 묘한 반전이 섞인 새로운 느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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