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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책이다. 책에 미친 바보라는 타이틀에 딱 걸맞은 그는 평생 2만권이 넘는 책을 읽었고, 읽은 책은 반드시 필사하는 습관이 있었다. 문장가로서 많은 문집을 냈고, 그의 문장 실력은 임금에게 신뢰를 얻어 규장각에서 관직생활을 오래했다.
그의 성품 중에서 가장 존경하고 싶은 점은 겸손함이다. 사람이 글을 많이 알고, 벼슬에 올라 임금의 총애를 받으면 자연히 배는 나오고, 목소리는 커지면서 인간미는 사라지게 마련인데 그는 정반대였다. 그는 수줍음이 많았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칭찬 한마디에도 얼굴빛이 붉어질 정도의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영처'라 칭했고, 대군자가 9분이면 자기는 현인의 경지인 8분을 목표 삼겠다 하여 ‘팔분의 꿈’을 꾸었다.
이 책에는 그가 비평가로서 조선과 중국 문장가들의 문풍과 그 수준을 적나라하게 평가함이 담겨있다. 인상적인 것은 그 평론의 수준이 아주 전문적이고 기반지식이 많이 배어져 나온다는 점이다. 저자의 독서습관 중첩이 문장을 보는 안목을 길러냈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하루도 글 읽기를 빼먹은 적이 없었다. 아침에 사오십줄을 배우면 그것을 하루에 50번씩 읽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차례로 나누고 한 차례에 열 번씩 읽었다. (p. 53)
독서는 입신과 같으니 당연히 처음과 끝의 순서를 잘 지켜야지 아무렇게나 할 것이 아니다. 지금 선반 위에 있는 몇 권의 책을 대강 훑어보고 곧 싫증이 나서 팽개쳐버린다면, 거칠고 엉성해서 앞에서 잊고 뒤에서 잃고 할 것이니 학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p. 55)
저자는 되도록 많은 책을 읽으라고 권하지만, 소설에 대해서만큼은 가차 없이 비판하고 나선다. 국가를 어지럽히는 타파의 대상으로 여겨 단죄한다. 특히 자신이 읽었던 수호전을 대표적으로 비난하고, 작가를 조롱하는 언급도 그 수위가 세다. 소설은 말하는 사람, 논평한 사람, 탐독하는 사람 셋을 모두 미혹시키는 타락의 매개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벗들에게 쓰는 편지도 인상적인 대목이 많았다. 그러나 그 서간을 공개하기 전에 저자가 쓴 말에서 더 큰 가르침을 얻게 된다.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되리라. 책이 없다면 구름과 노을이 내 벗이요, 구름과 노을이 없다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에 내 마음을 맡기면 된다. (…) 내가 아끼더라도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이 모두가 내 좋은 벗이 될 수 있다. (p. 121)
책의 구성이 조금 아쉽다면, 저자의 글만 읽어도 자연적으로 알게 될 많은 것에 부연적으로 덧붙인 말이 너무 많았다. 책을 읽는 흐름을 깬다. 그리고 옮긴이의 생각이 너무 많이 전달되고 있다. 독자의 감성을 깨고 분위기를 한정해버리는 듯하다. 옮긴이의 말이 많이 필요할만큼 어려운 책은 아니다. 첨부할 수 있는 자료같은 것이나 더 신경썼으면 좋았을 듯하다.
벗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자연으로 나가 여행을 하면서 담아놓은 그만의 이야기들이 많은 위로와 깨달음을 전달한다. 옛 사람을 배울 때는 실천하는 것을 최선의 공부로 삼아야 한다는 저자의 골수가 담긴 그 말을 중심으로 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여야겠다. 조선이 남긴 귀한 학자의 삶이 배인 따뜻한 가르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