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대 1 - 봄.여름
로버트 매캐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검은숲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패트릭 로스퍼스의 <바람의 이름>을 통해 만난 크보스라는 소년기는 참 인상 깊었다. 고독과 가난, 공포와 불안이 점철된 처절한 성장기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판타지는 광범위하고 신비성이 강조되며 정련에 의존적인 성격을 띤다. 이 작품에 바로 이어서 읽은 판타지 소설이 ‘소년시대’였다. 같은 장르임에도 색깔과 맛 질감 모두 판이하게 달랐다. 그나마 공통부모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두 소설의 소년 모두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영리했다는 것 정도.



저자는 로버트 매케먼이다. 1978년 로 데뷔했다. 1987년 <스완송>을 발표하여 브램스토커상을 수상했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 외에 등의 저서가 있고, 지금까지 발표한 16권의 작품 중 10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 <소년시대>는 브램 스토커상과 월드 판타지 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했고 세계 17개국 언어로 출간되었다. 또 하나의 걸작 <스완송>은 검은숲에서 6월 말에 출간 예정이라고 하니 고대하지 않을 수 없다.



코리라는 남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생활이 넉넉지는 않지만 단란한 가정의 외아들로 11살에서 12살로 넘어가는 시기를 살고 있다. 책을 좋아하고, 그만큼 상상력과 연상이 풍부하나 연산에는 젬병이고, 글 쓰는 것을 잘한다. 이상한 괴물잡지를 모으고 있으며, 상황판단이 빠르고 신중하다. 본성이 착하고, 어른스럽다.



시대는 1964년이고 배경은 제퍼라는 평온한 동네였다. 작가가 일 벌이기전까지는. 큰 호수에는 괴물이 산다. 미친 원숭이가 날뛰고 있다.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백 여섯 살 된 흑인 귀부인이 산다. 100남쪽에는 흑인거주지가 따로 있고, 위쪽으로는 백인이 거주한다. 코리의 아빠는 우유배달부를 한다. 살면서 이런 저런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이 아버지에게 정신적으로 결정적인 상흔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이 소설에서 가장 큰 소재로서 굵은 맥을 잇는다.



소설은 1년을 사계절로 나누어 색감 있는 묘사로 정겹게 진행된다. 어린이의 시선이 얼마나 곱고 반짝이는지 은유와 직유가 버무려져 주인공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위트 있는 생기를 불어넣는다. 소설의 구절구절이 어찌나 문학적인지 가슴 설레며 진정으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작가의 언어적 역량도 대단하지만, 한국 정서에 맞추어 멋스럽게 풀어낸 역자에게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코리와 그의 친구들이 고도와 고다 형제에게 받는 괴롭힘을 통해 소년이 가진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 딱 그때에만 누리는 풍요로운 사유와 그 자유가 부러웠다. 그리고 어린 소년의 생각을 빌려 풀어내고 있는 저자의 목소리에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불만과 분노로 가득한 어린 야만인보다 잔인한 것도 세상에 없다. 비업하기까지 하다면 더더욱 심하다. (p. 274)



세상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최고의 것을 믿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최악의 것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p. 312)



그때 나는 깨달았다. 감옥이 꼭 감시탑과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회색 벽돌 건물인 것만은 아니구나. (…) 사실 안에 붙잡혀 갇혀 있는 것을 직접 보기 전에는 거기가 감옥인 줄도 모를 수밖에 없다. (p. 331)



코리의 기지와 그 예민한 감각이 여러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몫을 한다. 1년 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간편하게 ‘크고 작은 사건’이라 압축할 수 있겠지만,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는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다 쭈뼛하고 얼얼하고 충격적이다. 그래서 독자 또한 코리가 소리를 내는 모든 곳에 집중하게 된다. 읽어나갈수록 몰입도가 좋은 책이다. 계속 소년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재밌고 흥미로우며 경쾌한 소설이다. 따뜻함이 진하게 배어있고, 독자를 꽉 붙드는 지혜도 있었다. 허나 조금은 억지스러운 상황설정이나 불필요한 판타지 요소들에 애먼 웃음이 일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나의 어린 시절 감수성을 끄집어내며 그것을 흔들고 꼬집어 깊은 내적소리를 듣게 할 수 있는 힘 있는 작품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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