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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로
켄 브루언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영화 <선셋대로>는 살인을 저지르고 미쳐버린 여배우를 그린 1950년 미국의 작품이다. 아카데미에서 3개의 부문을 수상했는데, 시나리오 각본상, 음악상, 흑백미술상, 즉 예술적인 가치를 완전하게 인정받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다. 워낙, 거장의 작품을 각색하는 작업이라 처음부터 고민이 많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리고 저자는 전작에 버금가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켄 브루언. 1951년 아일랜드 골웨이에서 태어났다. 자기의 고향을 소설에서 특별대우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25년 동안 아프리카, 일본,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했다. <The Guards>는 셰이머스상을 수상, 에드거상, 매커비티상 최종심에 올랐고, <The Killing of the Thinkers>로 매커비티상을 수상, <priest>는 배리상을 수상한다. <Blitz>와 <런던 대로>는 2010년에 영화화 되었고, 그 외에 <A White Arrest><Bust><Slide>등의 작품이 있다.
소설은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나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술 먹고 사람패서 3년을 살았고, 나오는 날 친구 노턴의 차에 올라 누가 살던 좋은 집에 들어간다. 그 집에 살던 사람은 사채 쓰다 쫓겨났고, 그는 사채조직에 들어가 일을 하는 대가로 그 집에서 산다. 출소축하파티에서 만난 여기자가 늙은 여배우의 집 수리공 일을 하도록 주선했고, 그 집에서 배우 릴리언에게 성적 충동을 느낀다. 그 여자는 늘 ‘다 안다는’듯이 웃는다. 배우의 집에는 충직한 집사 ‘조던’이 있다.
사채일을 하면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조직 보스는 그를 제대로 들이고자 주인공이 노턴 대신 범인의 덤터기를 썼다는 정보를 준다. 그런데 보스의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자, 주인공은 죽음의 위기에 몰린다. 여기서 갑자기 조던이 나선다. 주인공을 죽이려던 킬러와 보스를 죽이는데 큰 공을 세운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여동생과 사랑하는 여인까지 연속적으로 죽는다. 곧, 주인공 곁에는 이제 아무도 남지 않는다. 왜?
결말이 또렷했다. 복선과 암시가 노골적이었고, 후반부로 갈수록 노출되어 있어서, 미스터리 추리소설로서의 감질이나 반전에 대한 설렘은 없었다. 그러나 전개과정에서의 저자만의 독보적인 구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주인공의 하루하루가 참 좋았다. 교도소를 거친 하층의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랄까, 냉소적이고 딱딱한 남자로서의 그와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어쩔 수 없는 그를 대비하며 한 남자의 거친 인생을 보는 것 또한 새로웠다.
이 작품은 저자가 2001년에 발표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에서야 번역되어 나왔다. 작년에 이 소설이 콜린 파렐과 키이라 니이틀리라는 두 배우의 열연으로 재해석되었기 때문이리라. 콜린은 아일랜드 태생이고 키이라는 영국배우이며 자국고전영화에서 그 특징적 색깔을 보여준 바 있기에 ‘영국과 아일랜드’라는 제한된 국지적 색깔을 잘 표현해 냈으리라 기대하게 한다. 또한 20대 중반의 처녀가 ‘릴리언 파머’라는 60살은 되어 보이는 관능적인 여배우를 어떻게 표현해 냈을지 궁금하다.
저자의 문체야 실로 대단했겠지만, 그것을 감도 있게 살려낸 번역도 아주 훌륭했다. 범죄스릴러 뿐만 아니라 문학과 시에 젖어있는 주인공덕분에 이 소설에는 마음이 가는 명구들이 참 많다. 그런 것들이 이 소설에서 발견하는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문학과 영화와 음악을 소개한다. 이런 작품에 쓰이는 그 요소들은 또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따로 기록해 놓았다가 하나씩 찬찬히 읽고 보고 들으려고 계획해 놓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이 재미에 계속 소설을 붙드는 구나’였다. 그렇게도 재밌게 찰기진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