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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포 엘리펀트 (반양장) - 운명처럼 아픈 사랑이 그립다
새러 그루언 지음, 김정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5월 4일 영화 <워터 포 엘리펀트>가 개봉했다. <트와일라잇>의 남자주인공 로버트 패틴슨과 <금발이 너무해>의 여자주인공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을 맡았다. 또한 이 영화를 빛내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까지 합세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영화와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에 출간되어 시너지효과를 노리는 바로 이때에 책을 펼치게 되었다.
저자는 새러 그루언. 캐나다 벤쿠버 출생, 오타와의 칼튼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졸업. 미국으로 건너 가 통계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전문 자가로 일하다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녀의 저서로는 <Riding lesson><Flying changes>가 있는데, 두 작품 다 동물이 등장한다. 세 번째 소설인 이 작품은 오랫동안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했고, 44개 국어로 번역되어 3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그녀의 최근작품은 보노보 원숭이를 주인공으로 한 <Ape house>이다.
주인공은 93세인지 90세인지 알 길이 없는 노인. 5명의 자식들에게 재산몰수당하고 짐짝 같은 신세로 양로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직설적이고도 생각이 많은 이 노신사 제이콥 얀콥스키는 양로원에서도 늙어빠진 쭉정이같이 된 자기의 삶을 냉소하면서 작은 마찰을 일으키며 지낸다. 그런 그가 잠에 빠지면 어김없이 꿈을 꾼다. 23살이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꿈을. 그래서 액자가 계속 전환되고 있다.
코넬대학교에서 수의학과를 다니던 제이콥은 어느 날 부모가 예기치 않은 사고를 당해 돌아가시고, 재산은 한 푼도 없이 빚만 남았다는 현실을 맞닥뜨린다. 충격을 받고 마지막 시험에서 백지를 제출하고는 이리저리 떠돌다 우연히 기차위로 뛰어드는데, 그것이 ‘벤지니 형제 지상 최대의 서커스단’의 행렬기차였다. 우여곡절 끝에 ‘서커스 동물원 수의사’로 일자리를 얻는다. 오거스트의 밑에 들어가서 일했고, 그의 아내 말레나와 사랑에 빠진다.
말레나와 제이콥은 동물을 사랑한다. 반면 오거스틴는 동물에 대한 애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잔학함을 가지고 있는 편집성 분열증 환자였다. 여기서 서커스단이 사들인 애물단지 코끼리 ‘로지’가 출연하는데, 똑똑한 코끼리임에도 오거스틴의 심한 학대에 시달린다. 말레나를 의심하게 된 오거스틴은 제이콥을 죽음의 위협아래 몰고 가고, 도망을 결심한 두 남녀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다.
갑작스런 동물원의 대탈주가 일어나고, 로지는 막대기로 오거스틴을 죽이고 서커스 단장 또한 예견된 죽음을 보게 된다. 이로써 서커스단은 완전히 해체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로지와 말, 그리고 몇몇 동물을 데리고 해피엔딩의 결말을 본다. 액자 안에서는 그렇다. 나는 ‘1930년대 서커스 시절’이 아니라 90대 노인이 된 그의 삶에 더 큰 재미와 감동을 느꼈다. 노인을 이렇게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지금의 노인들, 그리고 많은 요양원에서 아이취급 혹은 물건취급을 당하는 노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인이 가진 깊이와 그 생각의 도달지점에서 배울 점이 참 많았다. 노인을 그리는 젊은 작가의 필치가 왜 이리도 탁월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물론 내가 아는 문제들만 이 정도다. 자식들이 말해지 않는 것도 엄청나게 많다. 나에게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런데 나는 걱정 좀 하면 안 되나?나는 그 이유가 알고 싶다. 나는 이 기괴한 보호배제 정책이 싫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나를 완전히 따돌린다.나는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더러 어떻게 그들의 대화에 끼라는 말인가? (p. 178-179)
90대 노인의 고독과 쓸쓸함, 점점 더 세상에서 배제되어가는 느낌.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감정을. 이리도 어린 내가. 그러나 저자로 인해 맛볼 수는 있었다. 늙어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중요한 점은 90대 노인의 젊은 시절이 너무 아름다웠고, 순수했고, 뜨거웠고,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쭈글쭈글 늙어가는 어떤 노인이든지 다 지난 날 아름답고 낭랑했던 젊음의 때엔 소중한 인생이었고, 값진 삶이었다는 느낌.. 새삼 이 부분에서 가지는 느낌이 남달랐다.
행복했다. 이 소설. 계속해서 읽어 내려갈 수 있는 흡입력 있는 문체와 스토리이다. 더구나 가려진 역사의 일부를 더듬어 내려갈 수 있는 기쁨과 독특한 캐릭터들의 우정 어린 이야기가 감동을 자아낸다. 또 하나, 동물을 사랑하는 저자로서 동물원을 모티브로 하여 독자에게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체는 영화를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로 상상력을 동원하게 한다. 여러 모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책이 명작이라, 읽고 나서 내 상상력을 단박에 깨뜨릴 수 있는 도박 같은 영화 관람은 꺼려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제 아무리 크리스토프가 오거스틴을 연기했다 해도 말이다. 책 그것이 머릿속에서 더 아닌 명화가 되었다. 아주 많이 배우는 소설이었다. 다만, 웬만큼의 성적농도가 있기에 청소년들에게 권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