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교복을 입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구립도서관으로 향했다. 거대한 책장 사이사이 빼곡하게 들어선 서적은 그저 제목만이 그 책을 느낄 수 가늠자였다. The Blue Day Book. 일단은 얇아서 꺼냈고, 표지에 있는 오랑우탄의 표정을 보고 움찔했으며, 그리고 보이는 문구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어린 마음에 위로가 되는 구절, 그리고 더 와 닿은 사진을 보고 그 자리에서 펼쳐서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초판은 2001년에 나왔으나 개정2판으로 2011년에 재발행 된 책이다. 표지색도 ‘Blue’라는 청량감과 함께 파스텔 톤의 따뜻함이 깊게 배여 있다. 저자는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스물아홉 살이 되기까지 8년 동안무려 90번의 거절을 당한 끝에 2000년 첫 책 <블루 데이 북>를 출간한다. 그리고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영광을 안았다. 이 책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일반에서 영어교재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백곰의 클로즈업된 표정을 시작으로 한다.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있지요.’ 문체는 더 없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많은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독자의 감성을 터치하는 것은 많은 말이 아니라 동물들의 표정에 섞인 한 마디를 대화체로 던지는 것임을 깨닫는다. 다양한 동물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도 뭉클한 사진으로 다가온다. 단순한 문구 하나에 적용된 동물의 모습이 익살스럽기도 하고 마음을 멎게도 한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것은 풍자적 그림이 따스한 미소를 짓게 하며, 은근한 말로 던지는 그의 언어가 진실한 위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울한 사람이 읽는다면 우울함이 가신다는 말보다는 따스함이 찾아든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책이 가진 품이 참 넉넉하다.
너무 유명한 사진들은 이미 인터넷에서 한번쯤 본 것 같은 익숙한 사진들도 있다. 또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사진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인간을 위해 동물이 쓰였다고 할 수 있기에 그 작위적 색채까지도 무겁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듯 싶다.
흑백으로 된 고요한 동물들의 움직임과 더불어 저자가 주는 메시지들을 슬금슬금 읽다보면 어느 새 감정적으로 풍요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동물들의 삶 덕분이 아닐까. 이러한 세상에 사는 인간들을 이해한다는 듯 그러한 표정을 지어주는 동물들에게서 삶의 기운과 격려를 얻는다. 행복함이 깃들어있는 책이었고, 마음을 울리는 마법 같은 책이다. 두고두고 읽기에 분량도 편하고, 정이 가는 동물의 사진도 곳곳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읽는 동안에 입가에 지는 미소가 실로 오랜만이어서 더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