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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 홀거 슈타르크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평점 :
독재체제 혹은 공산주의 국가가 자국민에게 가장 통제하고 있는 것은 단연 ‘정보’이다. 영화 <타인의 삶>을 보면 2차 세계대전 후 소련령이었던 동독에서는 전 국민을 상대로 혹독한 검열과 감시체제를 통해 개인의 정보 수집을 차단시켰다.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미국의 위협적인 맞수가 되고 있는 중국 또한 아직 인터넷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정보의 차단 정도가 아니라 거짓으로만 농락하며 후대에도 같은 세뇌교육을 대물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진정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존중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위키리크스의 출현은 마땅히 환영할만한가. 쌍수를 들 일이라면 ‘막대한 양의 국가기밀 유출’은 민주주의를 사는 국민 개개인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인가. 2011년 위키리크스는 어느 단계에 서 있는 것인가. 단편적인 면만 가지고는 논할 수 없는, 특히나 나의 소두로는 다 생각해 볼 수 없는 문제인 듯싶다.
그 위키리스크의 전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책, 이 책이 나오기 한 주전에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가 쓴 동명의 서적이 출간되었으나 나는 이 책을 골랐다. 저자는 마르셀 로젠바흐와 홀거 슈타르크. 둘 다 <슈피겔>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동료기자이다.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 그리고 불안정하고 애정결핍적 정서를 가지고 성장했으며, 컴퓨터로 해킹하기는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끝내주는 해킹실력을 소유한 그와 결탁한 소수집단으로 구성된 위키리크스는 인터넷이 있었기에 가능한 전문적인 활동이었다.
위키리크스의 성공은 또한 해커 활동의 성과이기도 하다. (p. 84)
위키리스크가 초창기에 내밀었던 그러나 주목받지 못했던 기밀문서의 출처는 바로 옆나라 중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개인정보해킹 대규모피해사례가 여러 차례 보도되곤 했는데, 모두 직간접적으로 중국 해커들의 소행이다. 중국 해커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기밀문서들은 또 얼마나 될까. 온라인의 무법자들이 세계정세를 쥐락펴락 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작은 암시는 아닐까.
아니, 그러게. 왜들 그렇게 정당하지 못하고, 깨끗하지 못했을까. 다들 앞과 뒤가 왜 그리 달라야만 했을까. 그리고 대표로 세계의 패권을 쥔 리더, 미국이 맞았다. 그러나 한 대 맞은 미국정부의 대응은 놀랍도록 과격했고, 이는 미국정치의 부패도를 점점 더 의심케 한다. 구린내 안 나는 정부를 기대할 수야 없겠지만 위키리스크로 인해 까발려진 미국의 그림자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산지와 그의 협력자들은 위키리크스 활동으로 상당히 많은 고난을 겪고 있다. 특히 1987년 태어난 브래들리 매닝의 영리한 손놀림과 멍청한 입놀림이 초래한 결과로서의 그 인생은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4장 결전의 시작 참조). 위키리크스가 했던 불법적인 행태를 비난할 정부가 있을까? 미국도 ‘불법적 정보수집’이라는 대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야 마땅한데 말이다.
첩보활동지침에는 미국정부자신이 정보도둑질에 매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p. 295)
지금의 언론은 갖가지 이해관계들로 제 가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언론의 기능 중 정보 전달과 사회 환경 감시의 의무를 비껴가면서 정부의 스폰서 노릇이나 하고 있는 언론을 믿고 위키리크스의 출현을 거리낄 수는 없는 입장이다. 분명 위키리크스의 존재는 앞으로의 세계정치사에 한 획을 그을 혁신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위키리크스가 행한 정보유출방법이나 정보공개 후에 벌어질 후폭풍에 대한 어산지의 무성의한 태도 역시 또한 지지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그 자신만의 정의에 따라 움직였고, 그 외에 것들에 대한 보호의식 혹은 그 의무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미국정치의 심장부에서 활동하는 ‘애프터굿’의 의견에 동의하는데 그는 ‘위키리크스는 개인들과 개별 조직들의 사적인 영역을 아무런 뚜렷한 도덕적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계속 침해하고는 이들 조직이 저지른 어떤 잘못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냥 자신들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함부로 남의 비밀을 공개했다’고 비난한다. (p. 357)
한쪽에서는 위키리크스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다른 편에서는 씨를 말리지 못해 야단이 나 있다. 사실 저자는 글에서 어산지와 그 행적에 대해 어느 정도는 옹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어느 쪽에 선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러나 위험한 세상, 그 싹이 계속 틔워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모아놓은 비밀, 그것이 보다 깨끗해야 할 것이며,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 그리고 국민을 위태롭게 하는 해커들은 뿌리채 뽑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