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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결탁 - 퓰리처상 수상작
존 케네디 툴 지음, 김선형 옮김 / 도마뱀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에서 대화를 나눌 때, 흔히들 ‘어떤’이라는 관형사를 통한 접근을 시도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를테면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세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서 그 나름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가장 난감한 류의 질문인데, 특히 ‘어떤 책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을 때 뭐라고 대답하기가 참 그랬었다. 뭐 얼마나 읽어봤다고 어떤 책을 논하겠나. 그런데 오늘 읽은 이 책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참 오래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존 케네디 툴. 1937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튤레인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미 육군에 징집되어 복무하게 되면서 <바보들의 결탁>를 쓰기 시작했다. 제대 후 뉴올리언스로 귀향해 원고를 완성시켰으나, 이를 받아본 유명 출판사 사이먼 앤 슈스터는 출간을 거절한다. 이어지는 원고의 수정과 출판사들의 퇴짜, 그리고 어머니와의 불화로 그는 점차 심한 우울증과 편집증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1969년 그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사후 어머니가 원고를 들고 백방으로 나서 줄줄이 출간 거절을 당한 끝에 워커 퍼시라는 작가를 만나 저자 사후 11년만에 출간된다.
처음에 이 책의 첫 장을 열 때, 저자의 스토리에 한참을 멎었다. 그리고 서문을 읽으면서 더 크게 마음이 멎었다. 작가의 삶 그 자체의 전달만으로 독자는 상당한 비극적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듯. 끝내 견뎌내지 못한 삶과 길이 남겨져야 했을 재능이 너무 아깝게 느껴져서 소설 초반을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곧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에 온 정신이 꽂혀버리게 되었다.
주인공은 이그네이셔스 라일리. 거대한 뚱보 지식인이다. 그의 복잡미묘불가침적특이성격을 한정된 단어로 표현할 길은 없어 보인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캐릭터, 앞으로도 보기 힘들 캐릭터이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한없이 매력적이며 충분히 이해 받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필자가 그의 신념과 거기서 비롯된 언행들을 – 정신 나간 소행마저 -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인물의 선이 뚜렷하고 실제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에서는 어찌 보면 하나의 개성으로 치부될 결함적 속성이 보다 짜릿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주인공의 성정 혹은 머나 민코프 – 펜팔로 주인공을 한없이 자극해대는 무늬만 여자친구 - 에 대한 주인공의 애증서린 광끼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아주 특이한 점은 저자는 모든 등장인물에 대하여 애정을 듬뿍 담아주고 있다. 그러니까 곧 여기에 나오는 돈 없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희화적으로 설정되어 있고, 돈 있는 인물들은 냉소적 시선을 노골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존스 – 고용인 - 는 계속적으로 웃음을 유발하지만, 레이나 리 – 고용주 - 는 우스갯소리를 하더라도 웃기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내용은 방대하고 어느 사건 하나 먹물이 낭비되지 않았다. 12장에 가면서 잠시 생각 없는 코믹영상물 한편 틀어놓은 듯한 전개에 실망하려고 할 때쯤 다시 독자를 설레게 하는 특유의 문구와 장치들로 끝까지 제대로 된 소설 한편 만나게 해준다. 그래서 처음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다음 작품을 만날 수 없음에 안타까움만 생산될 뿐이다.
저자가 너무 위대하다. 또한 그만큼이나 뛰어난 번역가를 만난 듯 하다. 이런 작품을 한국어로 이만큼이나 표현해 내다니, 실로 대단하다고 본다. 얼마나 공들여 번역했는지가 읽다가 계속 눈에 밟힌다. 읽는 내내 작가와 번역자가 동시에 보이는 작품, 아주 드문 경험이다.
작품을 통해 많이 배웠다. 특히나 미국 당시 상황, 풍도, 배경적 지식 등등. 주인공이 워낙 지식적으로 능변에 주변 인물 모두가 걸걸한 달변이어서 즐겁고도 유익한 작품이었다. 구절구절마다 다 머리에 기록하고 싶은 이런 작품 안에서 몇 마디 인상적이라고 추려내는 일 따위가 부질없는 일이리라. 행복하면서도 뜨거운 독서였다. 앞으로 이보다 더 신선한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