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개정판
셔윈 B. 뉴랜드 지음, 명희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 영화와 공포 영화. 두 장르는 모두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있고, 모든 배역이 보다 쉽고 가볍게 죽어버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필자는 두 영화 모두 죽음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공포 스릴러 영화는 죽음이라는 극단의 소재를 보다 자극적으로 개조하여 ‘관객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새로운 시도’라는 명목을 내걸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죽음이라는 것이 생각의 틀 속에 있는 것조차도 꺼리는 다수와 늘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소수. 그러나 누가 먼저 맞이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이 공간에서 죽음에 대한 지각을 갖게 해주는 책 한권을 만났다.

 

저자는 셔윈 B. 눌랜드. 부리부리한 눈매에 오뚝한 코, 굳게 다문 입술에서 풍기는 그의 인상은 냉철하고도 분석적인 학자의 면과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어우러진 그의 성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예일 대학 의과대 교수로 현재 진료 일선에서 물러나 의료윤리학과 의학사를 강의하고 있다. 또한 <코네티컷 메디신> 의 편집장이자 Journal of the History of Medicine and Allied Sciences의 사장으로 <닥터스 : 의학의 일대기 > 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특히 그의 또 다른 책 The Origins of Anestbesia는 의학계에 명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책은 죽음에 관련된 12가지의 주제로 분류되어있다. 1장에서 2장은 심장질환에 대해, 3장과 4장에는 노령과 그 죽음에 대해, 5장은 알츠하이머에 대해, 6장과 7장은 사고사, 자살, 안락사에 대해, 8장과 9장은 에이즈에 대해, 10장과 11장은 암에 대해, 12장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사고(思考)를 펼친다.

 

첫 장은 의대 3학년생인 저자가 처음으로 매스를 집었던 심장마비 환자에 대한 경험으로 시작되고 있다. 심장의 구조로부터 시작하는 여러 가지 심장 질환 관련 지식을 말하고 심장질환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생체 과정을 설명한다.

 

완전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심장만이 멈춰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란 영환이 빠져나갈 때처럼 ‘일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 심장의 침묵 뒤에도 완전한 죽음을 향해 진행되는 소리 없는 과정들이 있다. <78쪽>

 

미보건위생국과 세계보건기구(THE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모든 사람이 늙었다는 이유로 죽을 수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 ‘노령’므로 죽었다는 것은 합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할머니의 노화과정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고, 죽음은 노령을 가장 큰 원인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적 논리를 가지는 발언으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17, 18세기의 초기 실험주의론자들의 이론은 자연법에 따라 지구 환경과 생태계가 보존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자연법에 따르면, 인간은 제아무리 수를 써도 자연의 평형 혹은 질서를 깨뜨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식물이나 동물 할 것 없이 모든 생물이 소생하기 위해서는 죽음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속회로 상에서 보면, 사실 ‘질병’이라든지 ‘질환’이라는 개념은 존립할 수가 없다. <101~102쪽>

 

필과 재닛 부부의 사례를를 통해 저자는 알츠하이머가 얼마나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그 가족을 고통스럽게 하는 무서운 질병인지를 소개하고 치매 관한 연구과정을 순차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캐티라는 어린 여자아이의 참혹한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출혈에 의한 사망 과정을 그리고 있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독특한 평화로움과 침착함을 말하기도 한다.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에이즈로 인한 죽음이었다. 저자는 이 질병을 ‘이 빌어먹을 놈의 병’이라고까지 소개하며, 이 문제에 관한 한 하나님은 전혀 관계하고자 하지 않으신다고 표현한다.

 

인류 역사상 에이즈만큼 파괴적인 질병은 없었다. ‘파괴적’이라는 단어 정도로는 적절히 묘사할 수 없을 만큼 에이즈는 소름끼치는 전염병이다. 동서고금의 의각 역사상 이처럼 신체의 면역 기능을 잔인하게 말살시켜나가는 세균은 일찍이 없었다. 벌떼처럼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수많은 종류의 침입자들로 인해, 면역 조직은 방어 태세 한 번 제대로 취해보지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만다. <256쪽>

 

에이즈에 걸린 인간이 얼마나 처절한 투병생활을 하다 죽음을 맞게 되는지는 이스마엘이라는 남자의 죽음을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에이즈에 관한 연구실적도 소개하고 있고, 감염통로도 자세히 말해 준다.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그리고 주사기를 이용해 마약을 투약하는 상습중독자들의 감염빈도가 높았지만 현재는 모자감염을 통한 신생아들도 늘고 있고, 이성환자와의 성접촉으로 흑인이나 히스패닉계 여성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동성연애법이 추진되라고 했었고, 마약중독자들이 늘고 있는 우리나라가 에이즈에 관한 인식률이 더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암에 대해 의학적인 면에서 아주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여러 가지 암에 대한 진행 과정에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저자의 형제 ‘하비’의 위암 발병으로 인한 치료과정과 환자가족으로서의 저자의 욕심으로 형 인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얼마나 더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회상하며 독자에게 ‘헛된 희망’의 대가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죽음이 주어지는 자연의 섭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매시간 시간을 더욱 귀중하게 여기고, 생명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가 창조한 존엄성은 죽음의 필요성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큰 이타주의의 존엄성을 이루게 한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덧붙여 필자가 느끼는 점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가치 있는 인생으로서의 마지막 장식을 위해서는, 살아가는 삶을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죽음 자체를 미화하여 두려움을 버리라는 말보다 지금 살아가는 삶에서 정신과 육체를 소중히 함으로써 죽음만을 남기고는 병실에서 후회하는 인생을 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아주 유익한 책이었다. 단순히 죽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죽음에 순간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등 삶과 죽음의 총체적인 지혜를 배웠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기피함을 떨치고 주어진 시간을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보내어 인생의 가치를 이루어나가는 삶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귀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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