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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행복 - 제44회 페미나상 수상작
가브리엘 루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상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집 없이도 살고, 옷 없어도 산다. 노숙자도 살고, 원시인도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먹는 문제는 다르다. 먹고 사는 것은 항상 붙어있다. 그 ‘먹고 사는 것’ 이라는 기본적인 과제 앞에서 인류는, 어떤 모양새로든 끊임없이 불행을 겪어왔다. 과연 먹고 살기도 빠듯한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까. 허덕거리는 가난을 외면하고도 다른 일면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는 책, 싸구려 행복이다.
저자는 가브리엘 루아. 매니토바 주 생 보니파스에서 태어나 1937년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 뒤 유럽에 두 차례 체류한 다음 퀘벡에 정착했다. 1929년 위니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8년 동안 교사생활을 했다. 그 후 몬트리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1945년 이 책 ‘싸구려 행복’을 발표했고 캐나다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1947년,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1954년 ‘데샹보 거리’라는 작품으로 캐나다 총독상을 받고, 1977년 ‘내 생애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으로 또 한 차례 캐나다 총독상을 수상하며 비평계와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1983년 7월 13일 74세의 나이로 운명한 저자는 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때는 세계2차대전. 주인공 플로랑틴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식당에서 웨이터 일을 하며 집안 경제의 주축인 인물이다. 집에는 주렁주렁 감나무에 감 열리듯 동생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엄마는 그런 아이들을 돌보면서 삯바느질에 여념이 없다. 아빠는 집안이 어떻게 굴러먹든 말든 자기만 생각하며 사는 철부지 가장이다. 그래서 경제적 가장을 담당하고 있는 주인공이 콩쥐 컨셉이냐. 그건 아니다.
그녀는 여느 남자가 봐도 매력적인 외모를 소유하고 있으나 딱 그만큼 세속적이고 천박하리만큼 꾸미길 좋아하고 자존심 깨나 부릴 줄 아는 돈 없는 집 딸이다. 여러 손님들에게 대시를 받아도 꿈쩍 않던 그녀가 장이라고 하는 책을 든 사내의 작업에 마음이 넘어가려 한다. 장은 그냥 한번 찔러보는 것인데 말이다. 이 사내는 야망에 도취된 인물이다. 어떻게 하면 이 퍽퍽한 세상에서 자신도 한 번 성공하여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지만 연구하는 인물이기에 주인공에게 관심은 가나, 그 여자의 천박스러움과 결부 시에 계산되는 뻔한 결론에 이내 말 한마디 없이 떠나버린다.
갈려면 진짜 곱게나 가던가! 우리의 천박녀 플로랑틴이 가족이 없을 때 집에 그를 초대하니 슬그머니 와서는 애만 배게 만들어 놓고 갔다. 에라이 나쁜놈! 공황상태를 맞이한 여자는 평소 그녀를 애타게 바라보던 에마뉘엘과 데이트를 하고, 서둘러 결혼을 한다. 사랑 없는 결혼, 단지 그녀를 이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보루 같은 결혼. 에마뉘엘은 좀 사는 집 아들이고, 엘리트이며, 자의로 군에 입대한 멀쩡한 인물인데, 어쩌다 그녀에게 꽂혔는지, 원!
멜로 소설 줄거리만 적고 있다. 실제로 글의 윤곽이 이러하다. 그러나 가난한 집의 장녀를 보여주면서 저자는 처절하리만큼 빈곤한 이들의 가정 내부를 여지없이 까발리고 있다. 그녀의 엄마의 인생을 통해서, 다니엘이라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면서도 가족의 시선에서 외면당했던 그녀의 동생을 통해서, 전시 상황에 일자리가 없어 내내 놀다가 돈 때문에 자원입대하여 전쟁터로 가면서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그녀의 아버지와 동생, 엠마뉘엘의 동료의 삶을 통해서 저자는 전쟁의 시절의 가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굳이 뭘 느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소설을 읽고 있는 내내 말할 수 없이 많은 생각이 스치고, 읽고 나서도 뭔지 모를 여운에 한없이 잠겨있었다.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의 생각이다.
‘드디어 우리도 잘살게 됐어.’ 놀라운 만족감, 편안하게 가슴에 차오르는 허영심에 들떠 그녀는 몇 번이나 이 생각을 되풀이 했는지 모른다. (p. 581)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 기술의 진보가 첨단을 달리고 곧 로봇전쟁을 앞두고 있는 현 시대에서도 인류의 단 몇 퍼센트만이 밥걱정 없이 살고 있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이 미국도, 복지 국가로서 위상이 가장 드높은 북유럽도 빈곤 없는 정치를 해나가지는 못한다. 풍요로운 시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행복은 여전히 거기, 최소한 굶어 죽을 걱정 없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는 않을까. 싸구려 행복? 그 가치와 도덕성을 평하기 이전에, 인간은 그렇게라도 살면서 사람다운 인생을 영위해야 할 가치 또한 타당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난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글로 풍요로운 삶에 대한 값어치를 생각하게 해준 저자의 소설은 독자에게 제목과는 상반되는 값진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