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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때 처음 봤던 시대의 명화. ‘인생은 아름다워.’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있던 유대인들이 모두 수용소로 끌려간다. 주인공과 그의 아들도 그 죽음의 기차에 올라타야만 하고, 유대인이 아님에도 부인은 가족과 생사를 같이 하러 그 대열에 뛰어든다. 시국에 의한 정치적 판단도, 현실상황에 대한 지각도 없는 어린 아들에게 주인공은 게임이라는 단어 하나로 아이를 안전하고 공포심 없게 지켜나간다. 죽임을 당하러 걸어가는 순간까지 아들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주인공의 부정에 관객은 한없이 진한 감동을 선사받는다.
위의 영화가 주인공의 시선이라면 이 책은 어린 아들의 시선이다. 소설 ‘룸’은 24년간 지하 밀실에 감금되었던 오스트리아의 한 소녀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쓰였다. 주인공은 19살에 한 남자에게 납치를 당해 그 집 헛간을 개조해 만든 곳에 감금되어 수년째 정기적으로 강간을 당하고 있는 한 여인의 다섯 살 난 아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곳에 있었고, 언제 그 곳을 빠져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엄마는 아들 잭을 세상과 단절된 교육으로 살게 한다. 집안에 있는 것들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늘 한번 보지 못하고 자란 잭으로.
올드닉은 일요일마다 쓰레기를 치우며, 필요한 물품을 채워주러, 또한 엄마와 침대에서 삐걱거리려고 다녀간다. 잭은 늘 벽장에 들어가 그 삐걱거리는 횟수를 세고 있다. 올드닉이 실직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을 안 엄마는 장담할 수 없는 하루하루의 생활에 탈출할 결심을 하고 강제적으로 잭을 이용한다. 어렵사리 탈출에 성공한 잭. 그리고 범인은 수감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도 아주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실제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어 했던 부분은 그 이후의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아이는 처음 보는 세상 풍경이 너무 낯설고 이해할 수 없어한다. 햇빛 한번 함부로 쬘 수 없는 상태에서 엄마는 전 매체가 공격적으로 집중하는 그 고약한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그 지옥 같은 생활에서 아이를 지켜내고 싶었던 어미의 마음은 세상의 나와 보니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할 수 있었냐는 질타 섞인 물음을 감당해내야 한다. 그러다가 엄마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잭은 방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고 거기서의 냄새나는 담요라도 끌어안는다. 놀이터에 가도 생전 처음 보는 자신외의 아이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아이는 다시 한 번 그 방에 가보고 싶어 한다. 세상에 나온 지 몇 달 되지 않았건만 그새 아이는 자기가 묶었던 방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낀다. 그렇게 가보고 싶어 했던 그들의 삶의 현장이자 범죄의 동굴에서 모자는 차가워진 몸과 마음으로 나오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고 있다.
소설은 아이의 필치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주제에 비해 무겁거나 어둡게 다뤄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으로 인해 독자는 더 차분하고 깊이 있게 이 소설에서 주는 저자의 목소리를 읽어낼 수 있다. 아이의 목소리를 위해 저자는 문장의 호흡을 되도록 짧게 하고 미사여구 없이 보이는 그대로 묘사와 감정전달에만 집중된 필치를 보인다. 그래서 더 아이의 시선으로 잘 받아들여졌다.
그 참혹한 범죄의 도가니에서 아이가 이렇게 천진난만하게 때 묻지 않고 길러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소설임을 입증해주는 것은 아닐까 한다. 요즘 아이들처럼 TV를 보면서도 그렇게까지 순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기에 가슴 아프고 어딘가에 또 이런 범죄의 희생양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부디 이런 아픔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