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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문맹률이 점점 낮아지는 나라. 학력차별도 옛말이지, 뭐든 학위 하나씩은 가지고 사는 나라. 훈민정음 창제된 이래 문자 좀 쓴다하는 이 허다한 나라. 대학마다 국문학과, 문예창작과 하나씩은 있는 나라. 손바닥만 한 기계안의 자판으로도 글을 쓰고 있는 나라. 링컨은 글을 읽을 줄 알아 출세 길이 열렸다는데, 지금 이 나라에서 글을 쓴다는 자부심만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배고픈 시절에 글을 쓰려고 태어난 인생이 어떠한 길을 걷는지를 보여주는 이 소설의 저자는 강영숙 작가. 고등하굑 졸업 후 무역회사 타이피스트로 일하다가 1988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10년 후 서울 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8월의 식사’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 ‘리나’라는 소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한다.
주인공은 키만 크고 못생겼다. 저자의 모습을 조금 투영시켰을까? 저자도 십대때는 키가 크다는 이유로 운동선수를 했다고 한다. 사족이지만, 저자는 책에 아름답고 그윽한 자태가 엿보이는 사진을 실었다. 못생긴 것과는 관계없다. 가난한 집, 무책임하고 모성애 없는 엄마 김작가를 챙겨주며 살아간다. 반항으로 방황하고 싶을 나이. 동성연애에 눈을 뜬다. 동거에도 발을 담근 그녀. 잭 런던의 ‘강철군화’에 빠진 사회주의자와 지낸다.
헤어진 후, J작가를 만나 J칙령을 얻고도 서른이 넘도록 뭐하나 제대로 못하고 허접한 글만 쓴다. 김작가가 차린 글쓰기교실의 아줌마들 글을 보며, 아무나 갈겨쓰는 쓰레기 같은 글을 무시한다. 한국에서의 힘든 시절을 그녀는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를 보면서 버티고, 미국에서의 결혼실패 후 외롭고 고단한 시절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으며 자신을 투영한다. 아프다는 김작가를 간호하러 한국으로 돌아와 같이 살면서 미국에서 한번 열었던 ‘라이팅 클럽’을 다시 세우게 된다.
소설은 ‘중요한 건 의지가 아니라 테크닉이다.’ 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테크닉이 부족했다고 하나, 저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의 테크닉을 완벽히 소유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윤대녕 작가가 작품의 미덕을 ‘재밌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에 문화적 우려를 표했으나, 작품 속 김작가는 딸에게 재밌게 써야한다고 조언한다. 저자의 글, 정말 재밌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연결선상의 재미, 영상을 보는 듯한 실제적 묘사감각, 무엇보다 인물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저자의 글을 읽을 때는 어떤 마력이 있는 듯, 아무 생각없이 푹 빠져서 읽었다. 뒤에 해설을 보면서 저자가 글속에서 녹여낸 메시지를 깊이 있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읽느라 바빠서 깊은 생각은 못 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야기들. 너무 실제적이어서 누군가의 에세이를 보는 듯한 기분.
영인이가 실존인물이 아니고, 실제 사건이 아닌 픽션을 읽었다고 인정하기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탈했고, 아쉬웠을 만큼 소설을 치밀하게 그리고 사정없이 독자의 마음을 긁어놓는다. 마치 적어도 이름을 걸고 글 쓰는 사람이면 이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작정이나 한 것처럼 말이다. 테크닉, 저자는 눈부시게 탁월했고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