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 윤대녕 산문집
윤대녕 지음 / 푸르메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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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색 바탕의 저자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매끄러운 표지를 들추어낸 첫 장엔 ‘2010년 가을 윤대녕’이라고 적혀있다. 그렇다. 차가운 가을바람이 매서워지려고 하는, 독서와 사색으로 삶에 깊이를 한자라도 더하고 싶어지는 그 즈음에 발간 된 책이 있다. 제목은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

 

저자는 단국대 불문과 졸업후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통해 이상 문학상, 현대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 윤대녕. 그는 90년대의 문학적 시대정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로 불리었고, 그의 작품들은 ‘존재의 시원에 대한 탐구’의 자세를 지닌다고 평해진다.

 

이 책은 크게 5부분으로 나뉜다. 어린 시절 이야기, 일상 이야기, 여행 이야기, 저자의 문학 이야기, 저자의 독서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의 가난 속에 고생하던 어머니와 지금의 늙으신 어머니를 그리는 애처로운 감정이 잘 묻어나있고, 여태껏 소원한 관계에서 발전이 없는 부자지간에 대한 여러 번의 언급을 통해 부정에 대한 저자의 남모를 애착을 느낄 수 있다.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날 성형박피수술을 한 탓에 초상집에서 상복을 입고도 얼굴크림 바르러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처녀. 1년에 한 번 만나 먼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들과의 약속. 술을 부르는 불면증과 연례행사 같은 지독한 몸살. 만나는 사람들은 소탈하고, 개인의 일상은 차분하다.

 

저자는 자연을 좋아하며, 특히 산에 자주 오른다. 산에 가다가 절을 만났는지, 절에 가다가 산을 만났는지. 청소년기에는 교회에 다녔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절을 집삼아 여러 번 지냈다. 때문에 저자의 삶과 사색을 다룬 글은 전반적으로 불교적 색채가 진하게 묻어나온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재미라는 괴물’이라는 주제로 쓰인 저자의 단상이다. ‘재밌다’라는 말이 작품의 미덕을 드러내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친다. 세상이 내미는 갖가지 현란한 소비유혹에서 ‘재미’로 스트레스 해소 욕구를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면서도 저자는 ‘문화의 속성은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고민과 질문의 산물’이라 말하며, 문화는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처럼 어느정도의 능동적인 자기 투자와 이해의 노력이 필요한 품목’이라 전하고 있다. (p.188-190)

 

‘윤대녕의 독서일기’라 명한 제 5장은 총 29편의 서적이 소개되어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은 부분이다. 저자의 독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도 하고, 책을 읽고 어떤 식으로 글을 정리해나가는지에 대한 정수를 배울 수 있기도 하다.

 

가을날, 이 외로운 시절에 홀로 앉아 윤대녕의 에세이를 읽는 일은 재밌는 고독을 선사해 줄 것이다. 책장은 쉼없이 넘어갈만한 흥미로운 삶과 사색들이 줄을 잇는다. 삶에 대한 깊이있는 사색과 스치는 작은 부분까지도 그 의미를 담담히 적어내는, 아름다운 그만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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