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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홀 1 - 2009년 맨부커상 수상작
힐러리 맨틀 지음, 하윤숙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6세기 유럽정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단연 헨리8세일 것이다. 많은 문학가들이 그의 이야기를 전해 왔고,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며, 그의 등장은 시대를 불문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에 그의 존재감과 후세에 전하는 영향력이란 유럽역사의 어느 ‘폐하’ 못지않다. 이 책 ‘역시나’ 그 시절 그 왕의 일대기 안에서 이루어진다. 과연, 이 또한 그렇고 그런 소설 하나에 지나고 말 것인가.
‘울프 홀.’ 제목부터 음험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띠며, 책의 표지 디자인과 색상 선택은 붉은 기가 선혈같이 흘러내린다. 2009년 맨부커상 수상한 이 작품의 저자는 힐러리 맨틀. 1952년 잉글랜드 출생으로 열한 살 때 아버지의 실종을 경험하고 그를 둘러싼 불가해한 현실을 접하며 인간사회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독특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데뷔작 <매일이 어머니날>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을 통해 영연방작가상, 코스타상, 호손덴상, 첼튼햄상등 영국 주요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6년 대영제국 훈작사 훈장을 받은 최고의 영국작가 중 한명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문학적 재능이 정점에 달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고, 맨부커상 수상작으로는 가장 단기간에 베스트셀러에 올려놓는다.
토머스 크롬웰. 주인공이다. 자기 나이와 생일도 모르는 채 아버지에게 심한 학대를 받고 자라다 도망쳐 여러 잡역을 거쳐 변호사에 오른다. 금융쪽으로 탁월한 수완을 거두며, 추기경 울지의 밑에서도 일한다. 울지의 몰락과 동시에 토머스는 특유의 자질을 발휘해 차츰 기회를 잡아 간다. 캐서린을 폐위하고 헨리와 앤 불린의 혼인을 성사시키는데 일등공신으로 활약한 그는 계속적으로 국왕의 신임을 얻어 실질적인 영국 제2인자 자리에까지 오르는 주인공의 인생 상승 곡선을 그린 작품이다.
치밀한 구성력과 긴장감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위트가 일품인 문체. 글의 외양이 참으로 완벽했다. 또한 인간 내면의 심리를 밀도 있게 다루었고,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시대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빛났다. 여러 인물들이 얽혀있는 권력구조 속에서 썩은 내의 진원을 직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권력을 움켜쥔 자리에서 자아가 느끼는 외로움과 질려버릴 듯한 긴장감. 그리고 무너지는 권력의 뒷맛과 말로의 공포. 또한 권력자들의 이중적 삶과 고뇌. 여러 가지를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무겁고도 재밌는 책이다.
이 책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시대’를 겨냥하여 쓴 책이다. 그러니 역사적 의미와 그 시대의 풍조, 사상, 철학, 종교, 문화에 대한 전반적 지식과 견해가 충분하다면 저자의 필력과 구성미에 탄복치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어느 정도 흐름을 꿰고 있다면 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여긴다. 다만, 무턱대고 펼치기에는 그 시대의 종교적 분위기나 권력 구조의 통념과 마찰하거나 너무 많은 이름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불리는 것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1000페이지를 넘기어 가면서도 지속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설이다. 또한 인간사를 살아가는 처세의 고전을 읽는 듯한 재미도 발견할 수 있고, 내면적인 겸양을 갖추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소설이다. 권력이란 소재에 의거한 문학이라기엔 아주 귀한 보물들을 많이 내재시킨 지혜의 보고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