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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만 실종된 최순자
김은정 지음 / 판테온하우스 / 2010년 9월
평점 :
독일의 시인 잉게보르크 바하만은 나이 서른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고, 무언가를 하더라도 의구심이 드는 나이’라고 했고, 한국의 시인 최승자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때에 찾아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영화 ‘파니핑크’의 주인공 ‘파니’는 ‘서른이 넘은 여자가 멋진 남자를 만날 확률은 원자폭탄을 맞고 살아남을 확률보다 낮다’라고 말한다. 서른이란 나이에 대한 달갑지 않은 특별 인식은 국경을 뛰어넘는 냉기가 흐르고 있다. 그것뿐이랴. 서른 살에 이별을 맞는 여인의 방황 심리을 다루고 있는 진미령의 ‘여자나이 서른’이라는 노래가사는 절절한 서러움으로 서른을 도배해버린다.
김은정 작가의 처녀작인 이 책은 서른이 된다는 공포에 질려보았을, 살면서 한 번쯤 ‘내일모레 서른이다.’를 되뇌며 한 숨 쉬어봤을 사람들만 읽어야 할 책이라고 권고한다. 제목부터 그렇다. 저자는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여 잠시 방송작가 생활을 하였다. 전공이 소설 창작을 경원시하며 무심하게 20대를 보내다 부지불식중 머릿속에 움튼 소재로 펜을 들었다 말한다.
고등학교 때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홀로 남은 주인공 순자는 자퇴를 하고, 5념 넘게 변호사 사무실 사무직으로 근무한다. 검정고시학원에서 만난 연하남과 동거생활을 하던 중 차가운 이별을 맞보고는 우연히 사무실에 홍보하러 온 증권사 직원과 연애를 시작한다. 그리고 애인의 요구대로 300만원을 주식에 투자하고 얼마 안 되어 투자한 회사의 주식이 20배가 넘게 뛰어오른다. 순자는 이 돈으로 변호사님의 채무를 갚아주고, 법적인 나이 12년을 돌려받아 고등학생이 되게 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돈이 급한 변호사는 수락하고, 마침내 그녀는 29살에서 17살 소녀로 학교에 들어간다. 급격한 다이어트로 살이 빠진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고, 성공적인 학교생활을 보낸다. 그 지점에서 그녀의 순수한 사랑도 시작된다. 완벽하게 그녀의 서른은 실종되어버린 이야기.
이 소설은 ‘서른’에 관한 고찰적 문학이라기보다는 심리적 문학이다. 서른을 되새겨보는 소설이라기보다 그 나이의 여성이 가지는 현실적인 심리가 아주 잘 묘사되어있고, 문체 또한 유쾌하고 상큼하다. 책 중간에 드물지 않게 쓰인 명사들의 철학적 명언들은 글의 성격과 어우러지면서 흥미를 유발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
인상적 구절 하나.
여자는 남자의 공격을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막으려 들고, 그 다음부터는 남자의 퇴각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든다.(p.91)
극적 요소가 있어 문학을 읽는 재미가 있었지만, 글로서만 볼 때는 옆집 언니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듯 한 리얼리티가 강하고 공감 가는 심리가 많아서 뭉클하기도 했다. 책 앞장에 서른 살 부근의 여성들이 빼곡히 적은 추천사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꼭 서른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라 할지라도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할 수 있는 좋은 소재와 심리 해석이다. 서른 살의 여성과 연을 맺고 있는 남성이 이 시기의 여성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도 좋은 자료가 될 듯하고, 서른 살을 훌쩍 넘긴 나이든 여성에게도 좋은 회상거리 하나를 던져줄 수 있을 법 하다. 굳이 독자를 한정하지 않아도 될 법한 좋은 소설 한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