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의 춤 - 시몬느 드 보부아르
시몬느 드 보부아르 지음, 성유보 옮김 / 한빛문화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삶과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 하나의 선상에 놓여있지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삶과 죽음이 반대편 끝에서 단절된 채 존재하는 것 같이 살아가기 쉽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야만 꿈을 꿀 수 있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타인의 죽음을 목격했을 땐 온 정신이 그 죽음의 수용을 거부하기도 하고, 온 몸의 진을 빼는 격렬함으로 슬퍼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산 자로서 타의 죽음을 빨리 잊어버리기 위해 애쓰는 길로 나아간다. 때문에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생명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같은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표지는 흑과 백으로 나뉘어 단조로운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고, 춤사위를 짓는 여인의 작은 몸짓 위엔 죽음이란 큰 활자가 붉은 색에 덮여있다. 본문의 인상 깊은 구절이 적힌 검은 바탕에는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 라고 적혀있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작가가 가진 죽음의 인식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갑작스레 암이 발병한 어머니. 사실을 숨기고, 병간호를 하면서 지내는 6주. 저자는 그 시간동안 어머니의 삶에 대해 회상하고, 다가온 죽음을 알지는 못하나 하루가 다르게 죽음을 느껴가는 어머니를 보며 죽음에 대한 사색을 풀어 놓는다. 저자는 과거의 그녀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내 놓지 못한다. 결혼생활과 사교생활에 실패하여 성격적 결함이 점점 두드러지고, 자식들한테도 열등감과 집착으로 늘 충돌하던 어머니. 저자가 여자로서 보았던 어머니의 대한 연민마저 날카롭다.
하지만 엄마의 내부에는 피가 끓고 불타오르는 여인이 숨쉬고 있었다. 뒤틀리고 여기저기 잘려나간, 스스로에게 조차 낯설게 되어 버린 한 여인이 말이다. (p.72)
죽음을 꿈꿀 수 있을까? 노인이 되어 죽음을 바라보는 이는 자식에게 장지, 장례 절차와 같은 자신의 마지막을 유언하기도 한다. 늙어감에 따라 삶만큼이나 고결한 죽음에 대해 꿈꾸게 되는 것이리라. 유교사상이 깊게 자리한 이 나라에서는 예에 어긋남 없이 부모의 죽음을 잘 모시는 것 또한 효로 여긴다. 저자가 간호사의 말을 무시하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암수술을 진행시켰고, 부모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선택할 권리도, 생각할 권리도 박탈당한 채 죽어간다.
저자는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가 존재하는 병동 안에서 엄마는 편안하게 세상을 떠났다. 특권을 가진 사람처럼 그렇게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다.’ 라고 말한다. (p.172~3) 과연 부모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생각없이 아파하다가 죽어가도록 만든 자식이 말하는 ‘자기방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머니에게 지난 몇 년 동안 무관심했고, 소홀했고, 피해왔던 잘못을 6주 동안 간호를 한 것으로 ‘얼마간 보상을 했다’고 느낀다. 저자는 병동 안에서 보호자도 없이 무심한 의사들과 혹사당하는 간호사들의 인색한 자비 앞에서 무방비상태로 놓인 고통스러운 환자를 목격했기에, 자신이 어머니를 간호한 것이 굉장한 효도인 양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저자가 행한 거듭된 불효. 어머니의 죽음마저 자기합리화하며 잘했다 여겨버리는, 그리하여 그러한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까지도 서슴치 않는 저자의 행위. 그리고 자만의 사유(思惟)로 인한 수긍하기 어려운 문구. (p.154 네 번째 줄, p.193 마지막 줄) 죽음에 대해 통찰하는 기회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죽음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던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한 이들에게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