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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의 팡세 - 김승희 자전적 에세이
김승희 지음 / 문학사상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적 나는 위인전을 읽기를 싫어했다. 그리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여타의 수많은 전기 속의 위인들을 말하는 친구들이 이상하게만 생각 되었다. 어린 마음에 경멸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한 친구에게는 "그런 널 경멸해"라는 말을 해 그 친구와 된통 싸운적도 있다. (그냥, 그런 너가 참 이해가 안되네, 라고 말했으면 되는 일을)그렇게 나는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위인전들을 거쳐 평전과 자서전 그리고 소소한 자기 삶의 기록들을 나는 그렇게 거부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가끔 펼쳐들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착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착하고 대단하게 살 위인도 못되는데. 아이큐는 100아래에서 간신히 퍼덕이고, 품성은 남에게 욕 먹지 않고 살아갈 만큼 뿐이고, 봉사정신이라든지 희생 정신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국가에 대한 인류에 대한 사랑은 그저 꿈 속의 솜사탕 같은 말인데. 나는 어떤 신념을 가지고 싸울만큼의 결단력이라는 무기도 없고 치열함이라는 마음가짐도 없는데.
그런 그런 류의 책들은 나에게 그런 것들을 강요했고 나를 컴플렉스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그리도 요즘 대부분의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드는 자전전 에세이의 책들(요즘은 방송에서도 그런 류의 물을을 많이 내보내고 있다)을 읽을 마다(볼 때마다) 자신만의 생의 古와 삶의 무게가 범람하는 것을 볼 때 마다 콧웃음을 치곤 한다. 저만 그렇게 사는게 힘든가. 인간이란게 원래 자신의 고통이 가잔 큰 절대값이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의 고통값이 있을까라는 의심도 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김승희 시인이 이 책 "33세의 팡세"를 읽기 전 나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요즘은 소설을 쓰고 있지만 시인으로서의 김승희의 시들을 좋아하는 터라 혹시라도 그녀의 기록들을 읽어가며 여타의 책들에서 느꼈던 그런 반감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란 생각에 나의 고민은 계속 되었다. 80년대 중반에 출판되었던 에세이. 지금은 50을 훌쩍 넘어버린 시인의 33살의 흔적.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잡아 들었고 한줄한줄 읽어가면서 혹 그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들 때면 얼른 책을 덮을 것이라 마음먹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시간이 길어졌다. 유년의 기억부터 서른 셋까지 살아온 흔적들. 그녀 삶의 어느 단편들을 보는 일은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힘든 일이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나는 내 몸에 어느 한 곳이 훅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빠져나간 것은 내 안에 오랫동안 권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게으름과 오만으로 포장된 내 형편없는 내 삶의 태도들이었다. 그리고 무덤 속에 묻힌 것 처럼 낯설기만 한 내 어느 한 기억기억들. 물론 책을 읽다 조용히 덮은 적도 여러번 있다. 시인이기에 자신 삶의 무게를 더 절실하게 느꼈을 그녀. 그래서 지나칠 정도 민감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신경질적 모습이 보일 수 밖에 없는 그녀. 그런 그녀의 숙명을 생각하며 깊은 숨 한번 크게 들이 쉬고 나는 그 책을 다 읽어냈다.
열 아홉살엔 스무살이 까마득 했다. 스무살에 서른 살이 까마득했다. 서른엔 마흔과 쉰이라는 나이가 까마득 하겠지. 스물일곱, 서른이 그렇게 낯설지 않고 까마득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지금, 이십여년전의 그녀의 기록들을 아껴아껴 읽는 며칠의 밤을 나는 내 서른 셋의 나이 어느 겨울날, 기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