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dts] - 할인행사
소피아 코폴라 감독, 빌 머레이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수많은 말을 내뱉고 있지만 그 말을 멈춤 잠시 잠깐 혹은 그 말에서 벗어나 혼자가 된 시간 허무함이나 공허함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등 뒤의 봉의 무게와 부피가 커져가는 그 순간을 만나게 되는 일이 있지 않는가. 소통의 부재. 그건 어쩌면 태어나서 부터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는 것인지 모른다. 낙타 등뼈에 볼록히 쏟은 봉처럼 사람들은 소통의 부재, 그 부재에서 상실감과 외로움을 저마다 하나씩 등에 붙이고 살아간다. 등에 불어져나온 봉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전혀 느끼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그 봉을 보는 경우도 있다. 소통의 부재가 가져오는 그 상실감과 고독이 깊어져 쌍봉인 사람도 있고 하나인 사람도 있다. 혹은 아주 낮은 그 흔적만이 간신히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속 샬롯과 밥.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타인들 속에서 그들은 소통부재를 넘어선 소통불능을 느낀다. 그로인해 불면의 밤들을 보낸다. 무심히 텔리비전 화면 쳐다보기, 창 밖 쳐다보기, 음악 듣기, 낯선 거리와 사람들 속을 걸어보기. 그들은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자신을 소외시키는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다가가려고 나름의 시도를 해보지만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건 하나의 또 다른 소통 부재, 불능이라는 또 다른 봉 뿐이다.

  물론 감독은 소통부재와 불능의 모습을 극적으로(내겐 극단적으로 보였음) 보여주기 위해 영화 속 공간을 자국이 아닌 타국(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과 소외감을 보여줌으로써 혹 밥과 샬롯의 근원적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관객을 조금이라도 이해시키려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런 공간 설정은 어설픈 면이 있었다. 또한 샬롯과 밥이 경험하는 일들이 동양인적 관점(조금은 깐깐하게 생각한다면)에서 보면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문화적차이를 질적차이 혹은 동양문화(일본)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작가는 소설 속 인물에게 감독은 영화 속 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한다고 보면 이 감독의 폐쇄성 혹은 서양 우월주의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란, 약간은 격양되고 전투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내게는 그런 의도적 설정이 영화를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주었다. 감상적 문제를 뒤로하고서도 영화의 공간과 그 공간의 낯선 경험들은 밥과 샬롯의 근원적 문제가 무엇이었나, 라고 자문하게 될 정도로 영화적 핀트를 자꾸만 어긋나게 하는 장치였다.  밥과 샬롯이라고 대표되는 낙타들의 보여주기 위해 일본이라는 사막의 공간. 그 공간은 영화를 보는 내내 버석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모랫바람 처럼 버석이는 그 것을 감독이 노렸는지도 모르만. 

   밥과 샬롯은 일본이라는 타국의 어느 호텔에서 머루르게 된다. 호텔이라는 장소. 그 장소는 정착이 아닌 유동의 타인들이 머무르고 있는 공간이다. 진흙처럼 질척이지 않게 모래처럼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자신의 존재를 옮길 수 있는 그런 타인들의 집단 거주지. 일본이라는 타국적 공간 만큼 호텔이라는 장소 역시 영화 속 밥과 샬롯에게는 소외의 공간이 된다. 

  소외와 상실감 그리고 소통의 부재와 불능이 모래 바람이 부는 공간에서 샬롯과 밥은 만난다. 아니 서로 알아봤다고 해야 더 옳을 듯 싶다. 상태방 등 뒤에 붙어 있는 커다란 봉을 보았다. 자신의 크기만큼 커다른 그 봉에 그들은 끌렸다. 끌린다는 의미가 이성적 호기심 혹은 성적 호기심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듯 하지만 내 생각에 그들의 끌림은 인간적 끌림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한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막 하고 난 후 거울을 겹쳐 놓는 등의 불필요한 수고를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뒷모습을 볼 경우는 극히 적다. 자신의 등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간, 그 시간의 어느날 샬롯과 밥은 타인의 등을 통해 자신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등에 붙은 쌍봉.  그 커다란 크기는 자신의 소외감과 고독, 상실감인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둘의 관계를 로맨스적 관계라고 명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로맨스 영화,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의 사랑. 우연히 여행에서 만나 7일간의 아름다운 사랑. "이라며 이야기 하는 건 좀 우습지 않나란 생각을 하게 된다.  밥과 샬롯은 어찌보면 같은 사람일 수 있다. 앞면의 영혼이 뒷면의 영혼을 보지 못하다 보게 되는 경우처럼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뒷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일탈적 행위를 한다는지, 농담을 통해 그리고 걸러내지 않고 쏟아내는 말들을 통해 밥과 샬롯은  단절이 아닌 소통을 하게 된다. 며칠 계속되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 그들은 깊은 숙면에도 이를 수 있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괴로움보다 그것의 치료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소통의 부재와 불능에서 벗어나 진심어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1분동안의 잠이 1시간의 잠보다 달콤했던 기억. 일본이라는 낯선 곳에서의 짧은 만남이 그들에게는 그랬을 것이다.  

  영화 끝 장면, 밥이 샬롯에게 귓속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관객들은 밥이 어떤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귓속말은 그 두 사람만의 이야기이며 어느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되는 둘 만의 비밀이다. 엔팅 크레딧과 자막이 올라가는 내내 관객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그 귓속말.  감독은  통괘하게 관객을 소통에서 부재자로 만들었다. 혹 영화를 다 보았음에도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관객에게 내가 할말은 바로 이런거 였어요, 라고 웃으면서 바이바이, 손짓을 하듯이. 귓속말이 궁금하지요, 소통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 이제야 좀 알겠지요?라고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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