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사람들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으로 만났선 세풀베다. 환경과 생태를 소설 안에 녹여내어 유리공예를 하듯 입으로 불어 인물과 상황을 만들어 내는 작가. 그리고 입으로 후후 불 때마다 터지지 않을까 지켜보는 이를 긴장시키고 풍선이 불어나듯 불어나면서 환상적으로 잡힌 그 모형에 입이 떡 벌어지도록 만드는 작가. 이 작가의 힘은 바로 그런 아슬아슬함 속에서 보여지는 황홀경이다. 지구 끝, 발 아래는 온통 벼랑 뿐인 그 자리에 서서 책을 읽게 만든다. 독자는 읽으면서 벼랑 저 아래의 까마득함에 머리가 어질어질 하면서도 발 끝 아래에 솜처럼 뭉쳐진 구름의 폭신함을 상상하기도 한다.(개인적 취향이니 "노"라고 강력하게 붉은 레드카드를 내게 내미신다하여도..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시라)

<지구끝의 사람들>은 이기심으로 벼랑 끝에 몰리는 고래와 그 고래를 지키려고 벼랑 끝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린시절 고래잡이 배를 타고 고래의 포획을 경험한 화자. 성인이 된 후 고래를 지키는 사람이 된 화자와 그 화자 주변에서 거대한 인간의 이기심과 맞써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지킨 사람을 돕는 고래(이 부분의 묘사는 아름답기도 하면서 조금은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든 부분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그 바다 한 쪽의 작은 배에서 지켜보는 것 만큼 황홀경에 빠뜨릴만큼의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묘사였다.)

마구잡이로 고래를 잡는 일본 함선의 거대한 횡포는 세풀베다의 소설 속에 존재하는 바다에만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대한 횡포에 피흘리는 것은 고래만이 아니다. 거대한 횡포는 소설 속에서 움직이는 일본 인들만이 아니다. 작가 세풀베다는 바다에서의 횡포와 싸우는 고래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계라는 거대한 함선의 횡포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었다.

일본 고래잡이 함선은 미국이 될 수도 있고 북한이 될 수도 있고 한국이 될 수도 있다. 횡포에 사살당하는 고래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민족이 될 수 있고 종교와 문화의 차이로 끊임 없이 충돌하고 있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인간취급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일본이란 함선은 당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고래는 당신일 수도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세풀베다는 고래잡이가 이루지는 바다와 그 바다에서의 저항을 통해 우리라는 세계를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일본 함선일 수도 고래 일 수도 있다는 어느 하나로 구획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듯 지구끝, 벼랑에 설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생존이 곧 파괴가 되고 그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은.이런 세풀베다의 생각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읽혀져 나는 얼마나 전율했다. 무한대의 공간과 그 공간안에서 살아가는 무한대의 인간 감수성과 폭력성을 세풀베다는 잘 읽혀지는 동화같은 이야기로 그려내고 있다.   

얼마만큼의 이기심과 폭력적 횡포를 자제하느냐 행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나는, 당신은 고래잡이 함선이 될 수도있고 피흘리며 죽어가는 고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발 끝은 과연 벼랑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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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4-10-26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의식하지 못했지만 고래잡이 함선이 되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기심과 폭력적 횡포의 자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당.

어항에사는고래 2004-10-27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다는 님의 말에 감사드립니다.(에고, 쑥스러워라.)
제가 고래인지라 요 소설에 약간 예민하게 접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