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 박상우 작가수첩
박상우 지음 / 하늘연못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 본다는 일은 언제나 설레이면서도 가슴 조마조마한 일이다.어릴적 열쇠로 잠궈 놓은 동생의 일기장부터 아버지, 어머니의 일기 그리고 체육시간 혼자 교실에 남아 서랍 속에 있는 아이들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까지.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99년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 박상우의 이 책을 보는 일도 나이게는 일기를 훔쳐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설레이면서 조마조마 하면도 혹시 등 뒤에 누가 서 있지는 않을까 자꾸만 귀돌아보면서.

책의 내용을 보면 일상 속에서 부딪힌 풍경이나 사람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얻은 느낌들의 기록이다. 그 기록은 순간의 메모이기 떄문에 걸러지지 않고 포장되지 않았다. 그 글들은 방금 잡아올린 생선처럼 싱싱하고 생금 밭에서 뽑아온 상추처럼 푸릇루릇하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터라 작가가 찌은 사진들도 몇페이지 실려 있고, 소설처럼 개연성이나 필연성은 없지만 순간순간 작가의 느낌과 생각 그 진액을 그대로 마시는 기분이다.  어떤날의 기록하나 하나뿐만이 아니라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질문을 끝임없이 던지는 작가의 뒷모습도 볼 수 있다.

정제된 여과기를 통과한 소설 읽기고 좋지만 나는 이 책처럼 작가가 방금 쏟아낸 싱싱한 메모들을 좋아한다.  소설 속의 인물로, 풍경으로, 사건으로 다시 탄생되지 않고 사산 될지라도 그 사산의 흔적을 보는 일은 독자로써는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만큼 흥미로운 것이다. 사산 된 그 흔적들은 그가 써왔던 그리고 앞으로 그가 쓰게 될 소설 속에서 여백의 공간을 채워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부턴가 가방 한구석에 꼭 넣어다니는 수첩 하나. 모퉁이가 다 닳은 수첩을 넘겨본다. 아직 내 안에 임신 중인 그 어떤 기록. 가끔 헛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 떄마다 용기를 던져준다. 그 어떤 날의 기록 속에 나는 치열하게 살았고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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