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많음)


물론 이 계열 탐정의 원형은 셜록 홈즈다. 치밀한 관찰력, 사회성 부족, 순수한 논리력 등의 특징을 보이는 셜록 홈즈가 현대에 살았다면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받았으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크 해던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이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셜록 홈즈 단편을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한밤중>에서 주인공 크리스토퍼(15세)는 이웃집 개가 죽은 사건 수사에 착수하는데, 치밀한 관찰력과 논리력을 가졌을지는 모르지만 형편없는 탐정이다. 일단 가장 큰 장애물은 사람과 주변사회에 대한 공포심이다. 또 단서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낼 수 없기 때문에 실제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크리스토퍼는 개 사건도 해결하고, 혼자 힘으로 런던에 가는 모험을 감행하고, 가족 내의 문제도 어느덧 해결한다. 크리스토퍼 덕분에 (크리스토퍼가 의도한 바라기보다는 나비 효과에 가깝지만) 주변 세계에 평정이 찾아오긴 하지만 크리스토퍼에게는 그런 것보다도 수학 시험이 더 중요하다. '현실세계'에서는 기표와 기의가 일대일대응을 이루지 않고(컨텍스트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크리스토퍼의 머리로는 인간들의 비논리적이고 자의적이고 복잡미묘한 행태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기호와 논리의 세계로 돌아와 크리스토퍼는 안정감을 되찾는다. 크리스토퍼에게 중대한 성장과 발견의 계기가 된 모험이기는 하였으나 크리스토퍼 입장에서는 정상에서 벗어난 일탈에 가까웠다. 


프란시스 X. 스토크의 <현실세계의 마르셀로>(2009)에서 마르셀로(17세)는 좀 더 적극적인 탐정이다. 처음으로 특수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기 아버지 로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우연히 안면에 큰 상처를 입은 아이의 사진을 보게 되고 그것에 관한 비밀을 밝히는 데 착수한다. 마르셀로는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타고난 의식이 있기 때문에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고 행동에 나선다. 문제 해결과정에서 마르셀로의 추리력도 도움이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상 밖으로 뚫고 나와 부당함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였다. 아스퍼거 증후군과 연관되는 '질서감'이 '정의감'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애쉴리 에드워드 밀러, 잭 스텐츠의 <콜린 피셔>(2012)의 콜린 피셔(14세)는 가장 성공적인 탐정이고 시리즈 탐정물의 주인공이 될 예정이다. 

콜린도 아스퍼거 증후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읽지 못하고 사회적 관계나 관습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비꼬는 말이나 비유적인 표현을 간파하지 못한다. 그런데 콜린에게는 강한 탐구심이 있다.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콜린에게 의문과 탐구의 대상이 된다. 콜린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녹색노트를 늘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행동과 옷차림 등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는 "조사할 것."이라는 문구를 남겨 놓는다. 마치 화성에 온 인류학자처럼, 아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조사 탐구 대상으로 삼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무심코 지나칠 만한 행동까지도 빼놓지 않고 모두 노트에 적어 놓고, 그래서 학교에서 총기가 격발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조각들을 짜맞추어 퍼즐을 해결할 수 있었다. 콜린의 동기는 순수한 지식욕에 가깝다. 콜린을 평소에 괴롭히던 웨인이라는 아이가 총기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받았을 때 콜린은 바로 수사에 착수하는데, (웨인을 도와주면 더 이상 자기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자기보존욕구 때문도, 도덕적 정의감 때문도 아니고, 단순히 '웨인이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진상을 밝혀 사실을 바로잡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현실적으로 아스퍼거 증후군 탐정이 성공할 수 있을까? 

세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는 TMI(too much information) 경보가 아닐까 싶다. ASD(Autism Spectrum Disorder)에 속하는 사람들의 공통적 증상 가운데 하나가 감각 과민 증상이다. 너무 많은 정보량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감각에 과부하가 걸릴 때 극심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탐정이라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해야 할 텐데?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문제는? 텍스트를 컨텍스트 안에 놓고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는? 그런데 콜린에게는 제한적인 정보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듯하다.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읽지 못하는 것도 자폐증의 증상 가운데 하나인데, 콜린은 그래서 사람들의 무수히 많은 얼굴 표정을 그려 놓고 그게 무슨 감정을 나타내는지(슬픔, 기분 좋음, 화남, 잔인함, 당황함...)를 매치시켜 놓은 종이쪽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흘긋흘긋 컨닝을 하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대체 이게 가능이나 한 일이야?) 그런데 콜린은 러시아 영화감독 쿨레쇼프의 몽타주 효과를 들어, 자기 방식이 다른 사람(neurotypical)보다 우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뒤에 필름이 부족하자 쿨레쇼프는 필름 조각을 가지고 이리저리 짜맞추어 감정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실험해 보여주었다. 닭고기 장면 뒤에 무표정한 얼굴의 클로즈업을 보여주면 관객들은 "배고파 보이네."라고 생각한다. 관을 보여주고 똑같은 얼굴을 보여주면 '슬퍼 보인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다음에 보여주면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국 보통 사람들은 컨텍스트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텍스트를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다. 숲만 보고 나무는 보지 못한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총기가 발견되자 당연히 문제아인 웨인에게 의심의 눈길이 쏠리지만, 그런 컨텍스트/편견과 무관하게 사물을 직시할 수 있는 콜린만은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벨로 2015-03-3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스퍼거 증후군인 사람들이 논리적이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니까 유능한 탐정이 될 수도 있겠네요. <이미테이션 게임> 보면서 앨런 튜링도 아스퍼거 증후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고비 2015-03-31 20:1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튜링도 유명인 가운데 아스퍼거증후군인 사람으로 잘 꼽히더라고. 아인슈타인이나.. 글렌 굴드도 그렇다고 하고. 아무튼 천재는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