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1994)을 -대략- 읽었다. 잘 모르는 분야라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길래 생각나는 것만 적어 놓는다.
스티븐 핑커는 물론 "화성인이 보기에는 지구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똑같게 보일 것"이라는 촘스키의 보편 문법론을 지지한다.
이 책은 사피어-워프의 언어결정론/언어상대주의를 논박하면서 시작한다. 사피어와 워프는 1930년대에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제한한다, 언어에 따라 사고의 패턴이 달라진다고 하는 가설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으나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탓에 지금은 설득력을 거의 잃은 상태다.
(그러고 보니 탈식민주의 담론에서 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응구기-아체베 논쟁도 언어결정론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아체베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어 같은 언어로 문학작품을 써서 식민지인들의 경험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지만 응구기는 그것 자체가 식민화된 사고라면서 아프리카인의 정신을 담을 수 있는 아프리카어로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 상층 계급만 사용할 수 있는 지배자의 언어를 사용하면 토착어를 쓰는 하층민들이 이중으로 소외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언어가 생각을 담는 틀이라는 이론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그런데 <언어본능>을 보면 언어상대주의를 뒷받침한답시고 나온 연구들이 (에스키모 언어에는 눈雪을 가리키는 단어가 수백 종 있다든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실은 exoticism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하면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언어결정론은 직관적 설득력은 있는 듯하나 입증하기가 불가능한 이론인가 보다.
그런데 작년에 읽은 기 도이처의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Through the Language Glass, 2010)은 내 기억에, 두 가지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던 것 같다. 언어결정론/언어상대주의를 논박하는 한편 언어가 본능이라는 관점에서도 거리를 두어, 언어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문화적 진화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 책 앞부분에서는 호머가 바다를 "와인색"이라고 한 것(한국어 제목이 여기에서 나왔다)을 비롯해 색깔을 가리키는 어휘의 가짓수가 시공간적으로 차이를 보이는 점을 치밀하게 파헤친다. 호머의 표현 때문에
1. 호머가 색맹이다.
2. 옛날 사람들은 지금만큼 시신경이 발달하지 않아서 몇 가지 색상밖에 구분하지 못했다.
이런 설명들이 나왔지만, 기 도이처는 문화에 따라 색상을 나타내는 어휘의 개수는 다를 수 있으나 해당하는 어휘가 없다고 해서 그 색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의 진화에 따라 어휘가 다양해지는 것이다라고 정리한다.
왜 이야기를 하냐 하면, 고등학교 때인가 김소월의 "금잔디"를 배우면서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라는 구절을 들어 김소월이 적녹색맹이라고 주장한 학자가 있다고 들은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학적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문학 연구를 하나 싶다.
언어와 문화가 서로 주고니 받거니 함께 진화한다고 하는 게, 쉽고 빤한 설명이면서도 진리가 아닐까 싶다.
사실 번역일을 하다보면 두 가지 언어 사이의 치환 작업을 계속 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디에다 적어 놨다가 생각해 봐야지 하다가 진도가 급해 늘 잊어 버린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생각으로 옮겨 가니까 언어가 보편적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그런데 어휘나 구문, 표현의 차이가 옮기는 과정에서 중화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을 때가 많다.
오늘은 내가 번역해 놓은 문장에서 "깨진 요람"이라는 문구를 보고 놀랐다. 원문은 "broken cradle"이지만 요람이 깨지다니 어색하지 않나? 부서지거나 망가졌다고 해야 할 텐데 break의 1차적 의미가 "깨지다"로 떠오르기 때문에 이렇게 해놓은 거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으면 그냥 무심코 넘어갔을 거라 자신감이 또 조금 떨어졌다. 원고를 아무리 봐도 번역투를 말끔히 제거할 수가 없다.
한편 이런 딜레마도 있다. 번역투를 피하려고 영어스러운 표현을 거르다 보면 문장이 단순하고 표현이 유치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다고 해서 거기에 내 문장, 내 표현을 넣어 좀 멋을 내려 하면 그 부분이 너무 튀는 것 같다. 의미를 투명하게 전달하는 데 목표를 둘 것이냐, 아니면 글맛도 살려야 하느냐, 아무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