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 감상을 나누고 평점도 올리고 하지만 책을 보고 나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쉽게 잊기도 하고 꼭 붙들어 두고 싶은 문장을 만나도 어디 구석에 들어있는지 기억해낼 수가 없다.
얼마 전에 빌리에 드 릴라당(Auguste Villiers de L'Isle-Adam, 1838-1889)의 <잔혹한 이야기Contes Cruels>(물레, 2009)를 읽다가 눈이 번뜩한 순간이 있어 사진을 찍어 두었다.
이 단편집(1883)은 호러, 풍자, 환상, SF, 역사 등 온갖 장르로 분류될 수 있는 단편을 모아 놓은 꽃다발 같았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편, "우울한 이야기, 그보다 더 우울한 이야기꾼"은 그런 이야기성마저 뛰어넘는 탁월함을 보여 준다.
D라는 사람이 자기 친구가 죽은 이야기를 매우 극적으로 벗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내'가 어떤 작가에게 들려준다. 그 작가가 이 이야기가 '소설감'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이제 이야기가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사실이 허구화되었다는 사실이 (그 사실이 주는 충격적 효과가 더해져) 다시 허구화된다. 이 단편집 제목은 <잔혹한 이야기>지만 유혈이 낭자한 이야기는 아니고, 현실이 냉혹하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최초 영어 번역본 제목은 <Sardonic Tales>였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허구가 던져주는 아이러니, 현실 담론의 허위성이 실존마저 위협하는 이야기("비엥필라트르 집안 아가씨들"), 낭만화된 허구 속 인물에 현실의 옷을 덧씌울 때 느껴지는 당혹스러운 낯설음("비르지니와 폴"), 환상이 가장 잔혹한 고통이 되는 반전("Torture of Hope", 이건 여기 안 실려 있다), 관념의 힘으로 죽은 아내를 되살려 내는 이야기("베라"), 그밖의 단편들 모두를 관통하는 주제는 "진실보다 더 진실한" 환상, 잔혹한 현실의 거울과 다름없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우울한 이야기, 그보다 더 우울한 이야기꾼"은 릴라당의 환상성은 우울한 현실, 더 우울한 이야기, 더 더 우울한 이야기꾼을 통해 완성된다고 하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소외? 소격효과?가 일어나면서 우울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축하와 박수를 보내고 황당해 하기도 하지만, 그럼으로써 현실은 더욱 씁쓸해진다.
릴라당의 <미래의 이브>가 작년말에 출간되었길래 도서관에서 찾아 보았는데 릴라당 책은 이 작품집밖에 없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뜻밖의 보물이라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