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종이 넘는다는 <위대한 개츠비> 번역을 두고 말이 많길래 나도 한 마디 하고 싶어졌다.
독자 입장에서는 구매 전에 포럼을 통해 누구 번역이 최고인지 판정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게 당연할 거다. 그런데 아마도 번역자 입장일 내가 보기에는, 여기 저기에서 한두 문장씩 떼어 내어 비교하는 방식이 우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샘플링이 공평한 비교 방식이 될 수 없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글의 전체적 정조, 맥락의 연결, 문체, 인물의 성격과 관계 설정, 심지어 책의 물리적 형태까지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읽기 경험을 한두 문장으로 환원해서 설명할 수도 없을 터이니.
그리고 이런 비교 방식에서 한 가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은 요소가, 시간 순서다.
좋은 번역을 내놓고 싶은 번역가라면 당연히 이전 번역본이 있다면 그것들을 참고할 터이고, 따라서 나중에 나온 번역은 앞선 것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다. 번역 원고가 좋은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서 품질이 개선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면 적어도 <개츠비> 번역에서 원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터무니 없는 오역이 나올 가능성은 이제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번역을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다른 번역본이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할 테지만 이미 누군가가 좋은 단어/표현을 썼다면 그걸 (눈에 뜨이지 않게) 훔치고 싶은 충동을 굳이 억누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적당한 단어/표현을 생각해 낼 수 없다면 당연히 그걸 써야하지 않겠는가. 이런 경우에, 문장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으므로 표절은 아닐 테지만 다른 번역가의 아이디어를 훔쳤으니 정신적으로는 표절을 한 셈이다. 아니면 의미 파악에 도움을 얻는다거나, 혹은 반면교사로 쓰이더라도, 어쨌든 간에 다른 사람의 번역이 변증법적 발전의 토대로 쓰이게 된다. 그것에 대한 부채의식을 버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번역 작업도 (암묵적으로, 때로는 눈에 뜨이지 않는 표절을 통해) 축적, 계승, 발전이 이루어진다. 번역이건 창작이건 (혹은 그 사이의 무엇이건) 표절 혹은 모방/변용을 통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시간 순서를 고려하지 않고 비교를 한다면,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다빈치 그림과 피카소 그림을 놓고 누가 더 잘 그렸는지 비교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최근 판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개츠비>처럼 꾸준히 수없이 많이 번역된 작품 가운데에서는 '오역이 적다는 의미에서 안전한' 번역본을 여럿 찾을 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오역 문제는 크게 고민하지 말고 취향에 따라 자기와 잘 맞는 번역가를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전체적인 읽기 경험이 어떠할지는 말했듯이 한두 문장 맛보기로 미리 알 수 없을 테니, 적어도 몇 페이지 정도는 읽어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비교 논의 방식은 일단 번역자 입장에서 보기에 너무 불공평하고,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