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유원』의 감정은 '죄책감'이다. 유원이 죽은 언니에게 갖는, 자신을 구하려다가 다친 아저씨에게 갖는 공통된 감정이다. 원이의 성장서사가 담겨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이가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담은 책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읽혔다.
『페퍼민트』를 읽으며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그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낄까 고민해보니 이 책 역시 기저에 '죄책감'이 깔려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시안과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시안은 식물인간인 엄마를 간병하며 학교에 다니고 있고, 시안의 엄마가 그렇게 된 까닭은 감염병의 부작용이었다. 감염병의 슈퍼전파자로 몰렸던 해원이네는 이름도 바꾸고 사는 곳도 바꿔가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둘이 6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고 그 시간동안 몰랐던 서로의 인생을 하나씩 알게 된다. 그리고 해원이와 시안이가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과 과정을 작가는 담담하게 담아낸다. 또한 알 듯 하지만,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문장으로 명료하게 하는 힘이 이 작가에게 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청소년 소설에서 보기 힘들던 '간병'과 '돌봄'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 깊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번은 누군가를 간병해야 하고 또 죽기 전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문장이 마음을 친다. 그게 조금 일찍 왔을 뿐이라는 말과 시안의 자세하게 묘사되는 일상을 지켜보며 다른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나와 비슷할까. 자연스레 시안이 되어 있는 상상과 시안의 엄마처럼 되어 있는 상상을 동시에 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고단함, 수치심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생각하고 나아가 존엄사와 돈, 시간과 가족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죄책감이 떠오른다.
사이사이 보여주는 해원의 치열한 고3 생활과 그 일상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안의 삶. 대학과 꿈을 고민하는 해원과 그런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시안. 벗어날 수 없는 시안의 일상과 역시 벗어날 수 없는 해원의 과거. 해원의 현재를 흔드는 시안과 시안의 제안을 거부하는 해원. 계속 대비되는 두 아이는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을까.
무언가 출구없는 도로처럼 꽉 막혀버린 이야기가 내내 가슴을 조여오지만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회피할 수 없는 인생의 한 장면임을 받아들인다. 그걸 알기에 마지막 시안의 아빠의 행동을, 시안이 계획한 행동을 몰아세울 수 없는 나를 발견한다. 몇년 동안 계속 되는 감염병시대에, 예상할 수 없는 폭우를 맞이한 지금 이 이야기가 더욱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까닭이다.
+
『유원』에서 아저씨와 둘이 만나는 카페에서,
원이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는 쪽지를 주던
좋은 어른을 숨겨두었던 작가는
이번 책에서는 최선생님에게 그런 역할을 준 것일까.
읽으면서 시안에게
최선생님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시안의 엄마에게도.
아이들을 그늘에서 벗어나
햇볕으로 한걸음 나아가게 하는 건
인생에서 만나는 '좋은 어른'의 역할임을 기억해야지.
++
챕터 자체가 '시안'과 '해원'으로 반복되며
두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엄청난 띠지를 붙였는데,
모두 '시안'의 챕터에만 붙어있었다.
( 옮길 문장을 고르면서 발견했다. )
내 마음이 어디로 가닿았는지 확인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