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의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 P55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내가 귀하게 여기는 한 구절이다.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늙음은 버젓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결과일 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열차가 완전히 정지하기 전에 그러하듯, 흔들림 없이 잘 멈추기 위해서 늙어가는 사람은 서행하고 있다. - P68
다시 이전과 같이 나의 미래를 낙관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 사랑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도 끝과 죽음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늘 속에 몸을 둔 채로 볕을 보는 사람, 내 몫의 볕이 있음을아는 사람, 볕을 벗어나서도 온기를 믿는 사람은 될 수있을 것 같았다. - P97
문학은 결국 문과 창문을 만드는 일과 다르지 않나보다. 단단한 벽을 뚫어 통로를 내고, 거기 무엇을 드나들게 하고, 때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고, 안에서 밖을 밖에서 안을 살피는 일. - P111
‘결‘은 한때나 사이의 시간을 뜻하면서 또한 나무나 물, 살갗의 무늬를 일컫기도 한다. 전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이라 어떤 단어와 함께 했을 때 모호하고 상대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고, 후자는 선명하게 보일 뿐아니라 만질 수도 있어서 단어에 몸의 감각을 부여한다. 그래서 ‘결’은 어느 쪽의 의미로는 ‘꿈‘이라는 단어와 어울린다. 꿈은 실재하지 않지만 실감이 있고, 꿈을 꾼다는 것은 정신과 밀접하지만 결국 몸의 일이기도 하다. - P115
체스터튼은 『정통』에서 그러한 무게의 해악을 설명하며, "자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라앉지 말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쾌활함 쪽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결국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위에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무게에 지지 않은 채 깊이를 획득하는 일은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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