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보:169호 영화와 철학 사이 | 『마이너리티 리포트』― ‘행위’의 가능성,
민승기 / 영어학부 겸임교수
라깡이 즐겨 인용하던 농담, “나에게는 세 명의 형제가 있지요, 폴, 어니스트, 그리고 나.” 세 명의 형제가 있다고 ‘말하는 나’와 ‘형제 속에 포함되어 있는 나’의 분열. ‘나’는 둘이자 하나이며 바깥이자 안이다. 형제들을 구성하는 요소인 동시에 요소의 집합 속에서 드러날 수 없는 빈 공간. 그러나 빈 공간은 요소가 볼 수 없는 형태로 이미 요소 안에서 발생하고 있다. 바깥에서 포함됨으로써 안의 일관성을 와해시키는 빈 수레와도 같은 ‘말하는 나.’ 단순히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무’를 먹음으로써 욕망 자체의 결핍을 드러내는 거식증처럼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예언들의 집합을 내부적으로 절개하는 ‘틈’이자 그것을 완결시키는 빈 공간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말하는 나’는 미래를 예언하는 예지자들이며, 예언들의 집합을 탈주체화된 (중립적인) 지식 체계로 바꾸어놓는 것은 범죄 사전 예방국이다. 예지자들의 꿈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미래에 발생할 살해 장면이다. 무의식은 영상 이미지로 바뀌어 화면 속에 나타나고 살해자와 희생자의 이름이 공에 기입된다. 미래는 온전하게 재현될 수 있어 지배가능한, 이미 존재하는 지식 체계이다. 반면 예지자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살인 예정자들을 체포하던 앤더튼이 스스로 살인 예정자가 되어 쫓길 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납치한 여성 예지자는 “이 일이 현재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샤프(Matthew Sharpe)의 말대로 예지자들이 ‘알고’ 있다는 것(그러나 예지자들 자신에게 미래는 무의식적인 것으로 남아있다)을 ‘아는’ 그래서 미래의 지식을 활용하여 살인을 예방하는데 성공하는 것은 사전 예방국이다. 그러나 예지자들과 사전 예방국은 서로를 빗겨간다. 예지자들의 예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방국이 그것을 인지할 수 없거나 예언이 이루어지지 말아야 한다. 인지가 살해를 방지함으로써 미래를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예언을 발화하는 주체인 예지자들이 발화 내용을 알지 못하거나, 그것에 개입하지 않을 때에만 미래는 조작하거나 방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라깡의 농담에서 보듯 발화행위 주체는 발화내용 주체와 이미 겹쳐 있다. 행위는 발화내용 속에서 비가시적인 것으로 남아 내용 자체의 결핍을 드러낸다. 예지자의 주체적 개입은 예방국이 의존하는 예측가능한 미래의 ‘틈’을 드러낸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예측가능한 지식을 중지시킴으로써 지식으로 재현할 수 없는 잉여물로서의 미래를 드러낸다. 그것은 지식이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 미래적인 것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건, 기원적 살해이다.
여성 예지자의 개입에 의해 드러나는 기원적 살해는 사전 예방국이 성립하기 위해 억압되어야 했던 최초의 사건, 예지자들이 이렇게 이용되는 것을 반대했던 어머니의 살해이다.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를 설립하기 위해 동원되는 폭력. 벤야민의 말대로 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폭력이다. 어머니 살해는 단순히 현재가 지배할 수 있는 미래가 아니라 완전히 현실화될 수 없는 것(기억될 수 없는 상처)으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사전 예방 체계 자체의 결핍을 드러낸다. 다른 두 명의 예지자의 예언을 탈구시키는 여성 예지자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필연적인 미래에 틈을 내어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지식이 예측할 수 없는 주체적 행위는 우연적이며 예측불가능한 결과를 낳는다. 탈주체화된 형태로 존재하는 예지자들이 예정된 살해 이상의 것(예를 들어 살해하지 않을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통한 주체적 개입은 중립성을 표방하는 지식이 이미 폭력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앤더튼은 자신이 죽이기로 되어 있는 아들의 살해범을 쏘지 않음으로써 주체적 중지, 사전 예방 체제로부터의 ‘분리’를 획득한다.
(Minority Report, 2002)
쫓는 자가 쫓기는 자가 될 때, 살해자들의 명단 ‘바깥’에서 ‘안’으로 편입될 때, 지젝의 말대로 스스로를 바깥에서 안으로 편입시킬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앤더튼은 프로그램된 미래를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사전 예방국 책임자가 예지자들의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은 예방국을 가능하게 해주는 폭력이자 그것의 결핍을 드러내는 우연적 행위이다. 책임자가 죽이기로 예정되어 있는 앤더튼 대신 스스로를 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단순히 지식의 결핍을 뜻하지 않는다. 지식이 증가하면 채워질 수 있는 결핍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탈구되어 있는 틈. 주체라 불리는 무가 지식이 지배할 수 없는 공백으로 세계 속에 이미 기입되어 있다. 잉여물로 더해져 세계의 결핍을 드러내는 빈 공간, 바로 여기서 자유로운 행위의 가능성이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