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보: 167호 영화와 철학사이 『도그빌』― 예증과 오만 ‘사이’ 

민승기 / 영어학부 겸임교수



(Dogville, 2003)

자신의 의지와 판단을 내세우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갱스터 아버지를 피해 머물 곳을 찾던 그레이스가 도그빌로 들어온다. 도그빌 사람들이 타자를 수용하고 환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던 탐은 그레이스라는 명백한 예증을 갖게 된다. 아버지의 오만에 반대하여 타인의 행동들에 대한 판단을 중지시킨 그레이스는 타인에의 절대적 노출을 통하여 스스로를 선물로서 내어준다. 그러나 은총(grace)은 치욕(dis-grace)과 같아지고, 선물(gift)은 독(gift)이 되며, 부분으로서의 예(example)는 전체를 보증하기는커녕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잉여물로 기능한다. 그레이스라는 여분이 도그빌에 편입될 때 공동체의 결핍이 드러나는 것이다. 덧셈과 뺄셈이 같아지고 잉여가 곧 결핍이 되는 이상한 셈법, 이것이 『도그빌』의 세계이다. 손님을 잡아먹는 환대를 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주인-괴물처럼 도그빌은 오갈데 없는 그레이스를 결코 변제될 수 없는 채무로 묶어 완전히 고갈시킨다. 그레이스에게 현상금이 부과되고 거기에 따른 위험 부담의 증가가 그녀를 전적인 향유의 대상으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할 필요가 없던 일을 행하던 잉여 대상으로서의 그레이스는 이제 마을 남자들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소유물이 되어버린다. 반면 그레이스는 이 폭력적 환대에 한없는 용서로 대꾸한다. 무한한 용서가 불러일으키는 위험을 깨닫게 된 도그빌은 그레이스를 찾는 갱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그레이스는 다시 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오만에 관한 긴 토론 이후에 그레이스는 마을을 불태워 버리라고 명령한다. 한없는 용서를 갑작스럽게 중지시키는 폭력적 행위는 이 영화의 해석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그레이스의 행위는 지젝의 말대로 도그빌에 대한 복수일 뿐인가? 그것도 스스로 부정했던 아버지의 권력을 다시 빌려오는 내적 위반에 불과한? 아니면 키에자의 말대로 용서라는 환상 자체를 횡단하는 윤리적 행위일 수 있는가?

 

탐은 예증을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그레이스를 도그빌에 계속 잡아두는 이유도 그녀가 환대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예이기 때문이다. 예증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확신하고 그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거하여 기존 지식을 공고히 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예증은 폭력적이다. 경제의 바깥에 있던 잉여물로서의 그레이스를 경제적 대상으로 환원시켜 그녀의 독특성(singularity)을 제거하려는 시도. 그러나 탐이 추구하는 보편적인 선은 잉여물로서의 독특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교환될 수 없는 불가능한 대상, 선물-그레이스가 탐의 예증을 가능하게 해주는 동시에 불가능하게 한다. 탐이 그녀를 ‘이용’했다고 고백할 때 예증은 권력이 된다. 그레이스라는 잉여물을, ‘그녀 속의 그녀 이상의 것’을 관찰하고 증명함으로써 유용한 대상으로 바꾸어버릴 때 탐은 갱스터 아버지와 같아진다.

 

그레이스의 용서 역시 희생양 팬터지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만이다. 탐의 예증과는 다르게 그레이스는 기존 지식을 중지시켜 그것의 결핍을 촉발(provocation)시킨다. 노부스의 말대로 그녀는 스스로 눈이 멀어있다는 사실을 지금껏 인정하고 있지 않던 잭 매카이가 자신의 결핍을 고백하게 하기도 하고 건강염려증에 걸려 있는 탐의 아버지가 사실은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타자에 대한 그레이스의 무조건적 수용이 도그빌이 단순하고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타락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 희생양 팬터지를 통해서, 희생양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레이스는 도그빌의 결핍을 메꾸고 있는 것이다. “용서하기 때문에 오만하다구요?”라고 항변하는 그레이스의 말이 이것을 증명한다. 데리다의 말대로 스스로를 베풀 수 있는 예외적 공간을 획득할 때, 예외적 권리가 될 때 은총은 권력이 된다. 그것은 기존 질서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예외적 주권으로 행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그빌을 모두 불태움으로써 희생양 팬터지라는 예외적 공간을 제거할 때 비로소 주권 없는 은총이 가능해진다. 그녀는 먼저 모세라는 개를 쏘아서 예로 삼으라는 아버지의 예증을 이제 거절할 수 있다. 파괴를 더욱 자비로운 파괴로 보답하는 포틀래치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축적할 수 없는 선물은 파괴를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예증과 오만 ‘사이’에서, 예증과 오만 둘 다를 결핍시키는 재 속에서 모세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도그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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