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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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그런 식으로 사라지거나 운 나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출몰했다. 한번 벌어진 ‘틈‘은 짧게는 5분,
길게는 하루 정도 벌어져 있다가 알아서 닫히고는 했는데,
틈이 닫힐 때 근처에 서 있거나 경계를 넘고 있던 경우에는 고강도의 힘이 밀집되어 날카롭게 벼려진 단면에 신체가 절단되는 사고를 입거나 심한 경우 죽음을 맞이하기도했다. - P68

세상 곳곳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대략 한세기 전부터라고 추정된다. 말 그대로였다. 흰 종이 두 장을겹쳐놓고 한가운데를 커터 칼로 죽 그으면 두 장 다 칼집이남는 것처럼, 서로 마주할 일 없는 세상과 세상, 차원과 차원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그러니까 2085년과 2107 년을,
2099년과 2195년을, 2123년과 2100년을 연결하는 구멍이생겨버린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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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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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는 자신이 언제든지 먹힐 수 있다는 걸알았다. 자신이 키우는 건 말 안 듣는 손주나, 길고양이 같은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석류가 자신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었다.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그랬다. 옥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언제 자신을 해칠지 모르는 석류 덕분에 두려움을, 공포를 덜어낼 수 있었다. 외롭게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이불 속에서 썩어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석류를 키움으로써 자신은 혼자 죽지 않을 것이다. 썩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이 죽고, 더 이상 고기를 줄 사람이 없으면 눈앞의양분인 자신을 붉은 눈의 석류가 먹어치울 것이다. 기왕이면 석류가 아주 깨끗이 자신을 발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썩을 살점도 없을 만큼 깨끗이, 오랫동안배고프지 않게 두고두고 발라 먹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 좀 더 나중의 일. 그런 미래를 위해서는 석류가 자신의 곁에서 버텨야만 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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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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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는 그것 앞으로 다가갔다. 문득 이 풍경이 아주 그립고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공간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늘 누군가 자신을 맞아주고, 라디오 음악 소리가 들리던, 생기 넘치던 시절이. 집에 돌아와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는 게 이리도 두렵지 않은 일이었다니. 죽어가는 눈을 보지 않는 게, 살아 있는 눈을 보는 게 이렇게 심장 뛰는 일이었다니. 그것이 비록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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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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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주의 남편

손이 떨려 몇번이나 엇나간 탓에 짜증이 일었다. 살아생전 남편에게 번호 키로 바꾸자고 몇 번을 말했건만 남편은 비밀번호를 외우기 귀찮다는 구실로 끝끝내 열쇠를 고집했다. 원래가 그런 사람이었다. 낯선 것은 무조건 싫다 외치고 보는, 고여있는 것에 익숙한 사람. 그래서 마지막에도 그렇게 갔지. - P22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게 영원할 수는없는 것이다. 과거에 선명하게 빛나던 간판 글자가 이제는그 빛을 전부 잃어버린 것처럼, 홍하던 모든 건 쇠퇴하기마련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남편은 끝내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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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순간들이 있잖아요 아이들이라고 다를까요. 왜,
늘 집에 가고 싶다고 울잖아요. 그게 그 말이죠.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나를 상처 주지 않는 곳에 가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라진 재이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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