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면 내 아이가 섭식장애가 있을 때 어찌 했을까?
무심히(아니면 조용히) 바라보거나 기다리기만 하는건 못할것 같다.



그날 밤 나는 포도주를 잔뜩 마셨다. 그러고는 끝내 울면서 두분에게 말했다. 나한테 문제가 있는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내가 거식증인 것 같다고 지금 기억나는 것은 두 분의 눈뿐이다.
걱정과 약간의 두려움이 깃들어 있지만 주로 무력한 표정이었던눈. 두 분은 공감하지 못했고, 나는 설명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이 일이 벌어져도 어쩌면 그 경우에 더욱더 -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머니가 우편으로 보낸 쪽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먹어라."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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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따금 엄마때문에 치를 떨 수 있었던 것이 그립다. 엄마에 대해서 불평할 수있었던 것이 혹은 엄마가 너무 수선을 피우거나 너무 말이 많거나너무 주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열불이 나서 눈을 뜰 수 있었던것이 그립다. 다른 여자들이 자기 어머니를 헐뜯는 걸 수시로 듣게되는데 ‘아, 내가 우리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 그러면 나는 좀울적해진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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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글을 쓰는 것은 그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건을 기록하는 행위. 내게 벌어진 일과 그에 대한 내 감정을 세부적으로 적어서 활자로 고정해두는 행위가 내게는 늘 유용했다. 그것은 꽃을 책에 끼워서 압화로 간직하는 일, 혹은 추억의 기념품을 특별한 상자에 보관하는 일과도 좀 비슷하다. 일단 세부를 보존해두면,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을 덜고서 다른 일로 삶을 채우며 나아갈 수 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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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상냥하고 어머니다운 그 편지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내가 살면서 혼란스럽거나 우울하거나 막막했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밤중에 듣던 어머니의 목소리가깊고 한결같던 이해가 떠올랐다. 내가 어머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편지 봉투를 움켜쥐고 앉아서 흐느껴 울었다. 너무 격렬해서 몸이 다 아픈 울음이었다.
울음은 마음을 좀 편하게 해준다. 하지만 고통을 정말로 줄여•주진 못한다. 무엇보다도 힘든 점은, 이런 순간에 내 기분을 정말로 낫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내가 정말로 기대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 엄마라는 것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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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은 우리가 어머니의 임종을 집에서 지키려고 도로 모셔왔을 때 놓아둔 그대로 어머니의 침대 발치에 놓여있다. 나는 그 방에 들어갈 때마다 가방을 보고 몸서리친다. 모든것이 죽음의 상징이 된다. 
저기 가방이 있네, 엄마는 돌아가셨지. 
저기 엄마가 부엌에서 차를 담아두던 통이 있네, 엄마는 돌아가셨지. 
저기 엄마의 뜨개질 가방이, 수표책이, 3월에 작성하신 장거리 목록이 있네, 
엄마는 돌아가셨지.

지치는 일이다. 가끔은 나중에 내가 이 시기를 돌아보면서 맙소사, 내가 정말 피곤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리란 걸 알지만,
지금은 오히려 피로감에 익숙해졌달까 하는 상태다. 너무 많은 강렬한 감정들, 너무 많은 새벽 5시의 악몽들(엄마가 살아 있는 꿈, 엄•마가 죽은 꿈, 우리가 다시 병원에 있는 꿈, 엄마가 죽어가는 꿈, 엄마가 죽어가지 않는 꿈)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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