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내 감정에 솔직한가

는 공포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다 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감정을 겪어내나요? 어떻게 극복하나요?" 나는애비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마음을 꽁꽁 닫아건 사람처럼 보였던것을 떠올렸고, 최대한 부드럽게 이렇게 말했다. "애비, 당신은 지금 잘하고 있어요. 바로 이게 잘하는 거예요.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것,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감정 때문에 죽을 리는 없다는 걸깨닫는 것." 애비는 끄덕였다. 그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번에는 고통의 기색이 덜했다. 애비는 낫고 있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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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는 찰스강에서 스컬 보트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 어렵고 만만찮은 스포츠는 내게 식욕 말고도 터득할 것을 안겨주었다. 역시 그해에, 나는 섭식장애를 가진 여자들의 상호 조력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각 단계마다 배우는 것이 있다. 당신은경직성을 포기한다고 해서 반드시 통제력을 잃는 건 아님을 배운다. 자신의 힘을 느끼는 방법에는 좀 더 지속가능한 다른 방법들도있다는 걸 배운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부담스럽고 위험하게 느껴지더라도 혼자인 것보다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나은 일이란걸 배운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교훈들이기는 하다. 날카롭고 각진 상태를 포기한다는 것은 담요처럼 아늑한 보호감, 몸에 새겨져 있고안전하고 익숙한 생활 방식, 자신을 규정하는 방식 등등 다른 많은것들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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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내 아이가 섭식장애가 있을 때 어찌 했을까?
무심히(아니면 조용히) 바라보거나 기다리기만 하는건 못할것 같다.



그날 밤 나는 포도주를 잔뜩 마셨다. 그러고는 끝내 울면서 두분에게 말했다. 나한테 문제가 있는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내가 거식증인 것 같다고 지금 기억나는 것은 두 분의 눈뿐이다.
걱정과 약간의 두려움이 깃들어 있지만 주로 무력한 표정이었던눈. 두 분은 공감하지 못했고, 나는 설명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이 일이 벌어져도 어쩌면 그 경우에 더욱더 -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머니가 우편으로 보낸 쪽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먹어라."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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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따금 엄마때문에 치를 떨 수 있었던 것이 그립다. 엄마에 대해서 불평할 수있었던 것이 혹은 엄마가 너무 수선을 피우거나 너무 말이 많거나너무 주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열불이 나서 눈을 뜰 수 있었던것이 그립다. 다른 여자들이 자기 어머니를 헐뜯는 걸 수시로 듣게되는데 ‘아, 내가 우리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 그러면 나는 좀울적해진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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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글을 쓰는 것은 그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건을 기록하는 행위. 내게 벌어진 일과 그에 대한 내 감정을 세부적으로 적어서 활자로 고정해두는 행위가 내게는 늘 유용했다. 그것은 꽃을 책에 끼워서 압화로 간직하는 일, 혹은 추억의 기념품을 특별한 상자에 보관하는 일과도 좀 비슷하다. 일단 세부를 보존해두면,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을 덜고서 다른 일로 삶을 채우며 나아갈 수 있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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