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시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무엇도 보고 있지 않은 듯도 했고, 이면을 꿰뚫어보는 듯도 했다. 대부분 나처럼 사시인 아버지의 응시를 불편해했다. 사시가 된 것은 물론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었다.
예언자에 비견되었다. 그들에겐 하와이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땅이었다. 황사용에 의하면 그곳의 기후는 온화하며 물이 풍부하여목마를 일이 없으며 임금도 높은데다 도시가 잘 발달하여 교육의 기회도 많다고 하였다.
‘마음이 너덜거릴 조짐이 보이면 우선 자기 내면의 아이를 비접해 줘야 한다. 어제 저녁 식사 후에 딸기 한 대접 먹이고 11시전에 재웠더니 상태가 많이 좋아짐."아, 나도 오늘은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맥주 한 캔을 대접해주고 얼른 재워야겠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P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