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집으로 학수를 데려갔다. 여러번 같이 밥을 먹었지만 그때까지 집에서 밥을 먹인 적은 없었다. 척추협착증이 심한 데다 손님 하나 오면 접시까지 접대용으로 싹 다 새로 꺼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어머니를 배려한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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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의 나는 호의가 악의보다 더 비참하고 자존심 상하는 못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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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먼 놈의 남자가 형광등 한나도 못 갈아 낀대? 윤재는 그 옛날에도 혼차서 뚝딱 해치우등만. 멋 하나 윤재보담 낫응 것이 읎당게. 인물이 낫기를 해, 다정하기를 해. 아이, 니가 전등 쪼까 비춰봐라."
"윤재가 누군데?"
그때까지 나는 어머니가 재혼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형광등을 갈아 끼우려 의자에 올라간 어머니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가 어머니 대신 넙죽 말을 받았다.
"누구긴 누구겄냐! 늬 어매 첫서방이제. 서방 앞에서 첫서방 야그를 저래 당당허니 꺼내는 사램은 대한민국에 늬 어매 하나배끼 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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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리는?"
"일등!"
"아들보담 낫구만."
아버지가 소리 내어 웃으며 마당을 빙 둘러 내달렸다.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았는지 나는 아버지의 목 위에서 등허리가 흠뻑 젖도록 웃어젖혔다. 우물가에 핀 달큰한 치자꽃 향기에 숨이 막혔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그런 날도 있었다. 이듬해 아버지는 감옥에 끌려갔고,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불행했다. 광주교도소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만날 수 없는 아버지는 없는 것과 같았다. 몸 약한 어머니를 대신해 온몸으로 놀아주던 아버지를 잃고 나는 세상 전부를 잃은 느낌이었다. 그때 잃은 아버지를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한 게 아닐까? 아버지를 영원히 잃은 지금, 어쩐지 뭔가가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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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머리만 보고 노는 아이라 함부로 판단한 게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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