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의 마른 입술 한가운데가 갈라지며 빨갛게 피가 빼어나온다. 나는 손수건을 건네주고 기다란 의자 끝에 무너지듯앉는다. 그런 다음 복도 바닥의 한 지점을 골똘히 노려본다.
송곳 같은 것이 관자놀이를 찌르는 것 같다. 아니, 뾰족한 뭔가가 머릿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 같다.
가시 같은 것, 못 같은 것.
나는 내내 그런 걸 키우고 품어 왔는지 모른다. 그런 것들이 외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나를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불러오는 건 이토록 끔찍한통증이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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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잡으세요. 잘 따라오시고요.
나는 그만 주저앉고 싶다. 어디든 편하게 누워 심호흡을 하고흥분을 가라앉히고 싶다. 이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세상에, 그곳에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뉴스를 보듯이 아무 상관 없는 사람처럼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 어떤 세계라고 할만한 것들이 나를 점점 가운데로 몰아넣고 어쩔 수 없이 중심에 서게끔 만들고 있다.
자, 네가 어떻게 하는지 보자.
어쩌면 이 순간 모두가 크게 눈을 부릅뜨고 나를 지켜보는지도 모른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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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하는 동안 나는 젠이 아니라 나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라 딸애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건 세상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일이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나의 일이다. 이런 말이 내 안의 어딘가에 있었다는 게 놀랍다. 그런 말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죽을 때까지드러나지 않는 게 아니라, 마침내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렇게 말이 되어 나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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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나는 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젠의 이야기를 한다. 좁고 갑갑한 고독 속에서 늙어 가는 사람. 젊은 날을타인과 사회, 그런 거창한 것들에 낭비하고 이젠 모든 걸 소진한 다음 삶이 저물어 가는 것을 혼자 바라봐야 하는 딱하고 가련한 사람내 딸이 그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다는 상상만으로도 숨이멎을 것 같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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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서운해할 수만은 없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다고 말하고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렸다.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는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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