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도 못하는 걸 챙겨주는 레인

그애가 기다란 보온병과 작은 약통을 건네준다.
이건 커피고요. 이건 약통이에요. 뚜껑에 요일이 적혀 있거든요. 나중에 헷갈릴 필요가 없으실 것 같아서요.
시도 때도 없이 약을 먹었나, 안 먹었나, 중얼거리는 내버룻이 들통난 게 틀림없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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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의 목소리는 뜨겁고 그 애의 목소리는 적당히 서늘하다. 차가운 것은 아래로, 뜨거운 것은 위로, 곡선을 그리며 만들어지는 원. 그 둘을 섞으면 딱 적당한 온도가 만들어질 것같다.
이 애들은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말 책에나 나올법한 근사하고 멋진 어떤 거라고 믿는 걸까. 몇 사람이 힘을합치면 번쩍 들어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거라고 여기는 걸까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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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전세 보증금은 그린과 제가 같이 마련한 거예요. 그린이 급하게 돈 쓸 데가 있다고 해서 보증금을 떼서 새로바꾼 게 지난해고요. 그래서 사실 저한테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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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굴고 있다. 저 혼자 태어나서 저 스스로 자라고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걸 저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언젠가부터 내게는 통보만 한다. 심지어 통보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딸애와 나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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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딸애의 이런 말이 왜 협박처럼 들리는 것일까. 울먹일 것 같은 저런 표정이 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훨씬 더 강력한 수단이 되는 걸까. 딸애는 그걸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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