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아버지가 나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신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지 않는 건, 해가 갈수록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어서다. 아버지 이야기를꺼낼 때마다 마치 국이 펄펄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여는 느낌이다.
모락모락 솟아오른 증기가 빠져버리면 솥 안에 남은 건더기가 점점 좋아들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아버지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고, 대체로는 아버지가 남긴 담뱃갑과 어머니가 남긴 은가락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름 없는 고아가 아니라 남정호라는 사실을 충분히 기억할 수 있다. - P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