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지금 이 시각에도 이라크에는 전쟁의 물결이 쉼 없이 일렁이고 있다. 쏘고, 터지고, 죽고. 옥석구분도 유분수지, 전쟁에서는 성직자건 도둑이건, 부자건 거지건, 너나 할 것 없이 포탄의 머리 하나에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 잘보여도 소용없고 밑보여도 상관없는, 포탄이 가지는 냉정함은 안타까울 따름. 이 의미 없는 정치논리의 연극무대,그 연극은 공포물 그 자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기자인 피터 마쓰가 보스니아사태 때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뛰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한 편의 전쟁보고서이다. 겹겹이 덮여져 있는 그 보고서를 펼치면 바로 눈앞에 한 편의 비극이, 한 편의 공포물이 상영된다. 같은 나라 속에서 쏘고, 죽이는 모습. 어제는 어깨동무하며 노래부르던 이들이 오늘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살해, 강간, 고문을 하는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또한, 그 아이러니한 무대 속에 어김없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주변의 강대국들. 그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어김없이 정치논리에 의한 연기를 한다. 조금이라도 인정이 섞여 있으면 NG.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 골육상잔의 아픔, 주변 국가들의 행위는 그 아픔과 경험을 우리 역시 가지고 있기에 그 현장이 더 비통하고 쓰라리게 비춰진다.
많은 이들이 전쟁의 무서움은 참여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식이 없다는데에서 기여한다곤 한다. 그저 위에서 `쏴라. 죽여라.` 하니까 `오냐, 쏘마, 죽이마.`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던 인간의 목숨이 사라지는 총탄보다 못한 곳 전쟁터. 이런 자의식 없는 행동 속에서, 인간생명은 널부러져 있는 총탄 한 발보다 더 귀중할 게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삶의 기로에, 삶의 지옥 저편에 떨어져 있다. 내가 평화를 외치며 총을 내려놓는 순간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저 살기 위해 쏘는 것이다.
전쟁의 진정한 무서움은 바로 지도자에게서 비롯된다. 김일성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고, 부시가 그렇다. 그들이야말로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그저 책상에서 턱이나 괴고 앉아 있는 진정한 살육잠재의 표본이다. 한쪽에서는 죽고 한쪽에서는 휴가나 보내는 그림은 언뜻 상상만 하려고 해도 힘에 부친다.
보스니아 사태 때도 매한가지다. 밀로셰비치. 그는 인간이 야수가 될 수 있음을 원 없이 보여 주었다. 우리는 그의 야수성에 몸서리를 치지만 사실 그 자신은 자기가 야수가 된 줄도 모르고 그저 웃고만 있다. 자신은 악이 아니라며, 그저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던 그. 그러면서 뒤로는 사람을 마음껏 능욕하고 살육하라고, 그것이 애국이라 세뇌 시키는 그. 이 치장된 그의 말속에서, 그동안 절망하며 죽어갔던 많은 이들의 의미가 사라진다.
이런 지도자들의 웃음과 현장의 울부짖음이 가지는 아이러니를 <네 이웃을 사랑하라>에서는 잘 드러내준다. 각색되지 않은 사실 그 자체를 내보내는데에서, 우리는 그 자체에 더 경악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는 살육명령. 복종이 곧 애국이라 세뇌된 군인의 칙살스런 행동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지? 주변 나라는 뭘 하는 거야?
이렇게 사실 그 자체를 보여줌으로 해서 우리는, 각색이 제한하는 사고의 폭을 벗어나,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스스로 느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피터 마쓰도 그냥 사실만 전달하겠다 했다. 전쟁반대서도 아니고, 정치비판도 아니고,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만을 전달하고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실 전달로써 할 일을 다하고 떠나는 피터 마쓰를 따를 일이 아니다.
우리의 망각 속에서 사라져갔던 수많은 이들의 울부짖음들. 그 상흔이 체 아물기도 전에 또, 지구편 저기서 다른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깨닫지도 못한사이 세상을 떠나는 그들의 비명에, 이제는 귀기울여야 한다. 더 이상 망각의 수레에 끌려다니는 모습은 우리에게 맞질 않는다. 이제는 생각해보고, 느껴보고, 자기 스스로 각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