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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의 부리 - 갈라파고스에서 보내온 '생명과 진화에 대한 보고서'
조너던 와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추천 / 이끌리오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진화, 진화론. 아직까지도 특정 종교와의 지루한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서로 가타부타 참견만으로 언성을 높이고 있다. 누가 옳든 그르든, 언제 그 논쟁이 끝나든 간에 서로의 사상이 담긴 하나의 이론으로 보는 것이 다원주의 사회의 도리인듯 하고 그것이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 않는 유일한 방편 일 것이라 본다. 물론 결국에는 한쪽은 승리의 미소를, 한쪽은 패배의 피눈물을 흘리겠지만... 결과야 어떻든 간에 그런 생각의 기류에 편승하고 보니 나는 그 쪽, 진화에 눈길이 간다.
갈라파고스 군도. 그 옛날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낼 수 있게끔 모체가 되었던 그 곳. 이제 그 곳은 다윈이 아닌 그의 추종자들이 못다한 다윈의 연구를 되물림 받아 이뤄내고 있는 장소로 변모했고, 그 성과들은 다윈이 대만족의 미소를 지을만큼 확고한 것들이다. 특히나 이 <핀치의 부리>는 그 중에서도 대단한 것으로, 그랜트란 성을 가진 한 부부가 근 20년을 이 섬에 거의 눌러 살다 싶이 하며 `핀치`라는 새 하나로만 연구를 한, 결코 범상치 않은 보고서 일기다.
거의 20년이라는 세월을 무인도인 그 좁은 섬에서 짓눌려 지낼 수 있을까? 그것도 연구라는 하나의 열정만으로. 집안에서 편히 앉아 담배나 뻐끔뻐끔 피며(사실 담배는 안핀다.) 한가로이 책장이나 넘기고 있는 나에게는 경악 그 자체다. 이제 조용히 그 분들의 성과에 깊이 머리 조아리며 탐독을 준비한다.
우리는 사실, 어릴 때 배워서라도 갈라파고스 군도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리고 각 섬마다의 생물들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연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 그 섬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며 무엇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정말 궁금한 미스테리 일 수 밖에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가볼 수가 없으니. 하지만 드디어 <핀치의 부리>에서 우리의 그 궁금의 갈증을 말끔히, 아주 깨끗이 해소해 줄 지식의 냉수를 마련했다. 자, 모두 자기의 잔을 준비하시라.
1mm의 부리의 길이 변화만으로도 전체 생물의 장래가 달리고 몇 g의 체중차이로도 자연이라는 생태에서는 밀고 밀리는 작용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사실 나처럼 일반적인 지식만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믿기 힘든 광경이라고 토로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고 그 사실은 그랜트 부부가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 거짓없는 자연의 연극. 편한 집에서 두다리 쭉 뻗고 관람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지적 갈망에 또 하나의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지적 갈망의 향유. 그 매력적인 잔치인 <핀치의 부리>.
<핀치의 부리>에서는 알 듯 모를 듯, 쉬울 듯 어려운 진화에 대해, 그저 이론 전개가 아닌, 실제 관찰과 연구의 결과로써 유추를 하는 방식이라, 과학쪽에는 별반 지식이 없는 나에게도 큰 무리없이 다가왔다. 오히려 실제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생동감에 들떠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비록 진화에 대한 완벽한 이해의 체계는 갖추지를 못했지만 실제의 관찰과 연구를 통한 그 과정에 나름의 틀을 확고히 세울 수 있었던것은 크나큰 수확이었다.
이제 그 크나큰 진화란 이론에 그저 멍하니 겁만 쥐어먹고 있던 분들에게도 그 문이 활짝 열렸다. 우리는 그 문을 열게끔 이제껏 노력해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당당히 걸어들어가기만 하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