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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창비시선 279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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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이다. '포옹'이라니 제목부터 따뜻하다. 하지만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다. 세상을 보는 시인의 시선은 따뜻하지만 시인이 사는 세상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번듯한 직장을 구하고 싶어하던 청년은 군고구마를 굽고 있고, 지하철 역에는 머리를 푹 숙이고 손바닥만 내민 노숙자들이 살고 있다.

  청년은 지금 불 위의 고구마처럼 타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 온몸이 딱딱하고 시커멓게 타들어가면서도 / 기다림만은 노랗고 따끈따끈하게 구워지고 있을 것이다 ('군고구마 굽는 청년'부분) 

   나는 그대의 불전함 / 지하척 바닥을 기어가는 배고픈 불전함 / 동전 한닢 떨어지는 소리가 천년이 걸린다 ('걸인' 부분)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그림자에 귀를 기울일수록 시인은 절창이 된다. 하지만 세상의 그림자에 귀를 기울일수록 시인은 마음이 아프다. 취재를 하려고 간 것이 아니라 시를 쓰려고 간 것이기 때문에 시인은 세상의 그늘에서 발을 떼지 못한다. 오히려 흠뻑 젖어 버리고 만다.

  강가의 물새 한 마리 / 물에 젖지 않고 / 순식간에 / 물에 뛰어들어갔다가 나온다 / 나도 물새가 되어 / 물에 뛰어든다 / 그만 흠뻑 물에 젖어 / 나오지 못한다 ('물새' 전문)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소박한 시인의 마음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고뇌한다. 현실과 이상의  '틈'에서 상처받는 존재를 만난다. 

  살얼음 낀 겨울 논바닥에 / 기러기 한 마리 / 툭 /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은 / 하늘에 / 빈틈이 있기 때문이다 ('빈틈' 전문) 

  이 시인 앞에서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 화장실과 똥까지도 시가 될 수 있나보다.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서로를 꼭 껴안은 채 발굴된 사건의 현장에서 사람들은 자꾸 사진만 찍지만 그 부부는 알몸이 부끄러워 서로 꼭 껴안은 팔에 힘을 준다. 더럽고, 불쌍하다고 하는 것들이 부끄럽다고 뒷걸을칠 때 시로 그것들을 껴안아 주는 시인의 포옹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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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수 -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도마복음'풀이
오강남 지음 / 예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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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도 기독교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전국 방방곡곡 솟아 있는 십자가만 봐도 이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와 같은 비기독교인에게 맹목적으로만 보이는 그들의 믿음은 불편하다. 사랑을 외쳤다는 예수님은 왜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리 잔인하리만큼 무서운 말씀들을 하셨을까. 살면서 기독교 문화를 많이 접했음에도 믿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일단 믿으면 된다, 믿으면 좋다, 편안해진다는 식의 막무가내 때문이었다. 


   오강남 선생님이 쓴 <또 다른 예수>는 이런 막연한 믿음에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이 책은 <도마복음>을 소개하고 풀이한 책인데, <도마복음>은 1945년 경 이집트에서 발견된 성서로 아직 주류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성서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 이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예고하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으라는 가르침을 설파하는 반면에 <도마복음>에서의 예수님은 스스로의 깨달음을 강조하며, 언제가 아니라 어디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의 예수님 말씀을 저자는 동양의 공자, 노자, 석가 등 기존의 성현들과의 가르침과 비교해 보며 깊이 있게 분석한다. 그러는 동안 나와 같은 비기독교인에게도 예수님은 친근하면서도 위대한 사상가로 다가온다.  


   저자는 기독교와 타 종교 간의 연결고리를 <도마복음>에서 찾고 있다. 기독교와 유교, 불교, 도교 심지어 민족종교인 천도교가 어떻게 공통된 주제로 발전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기존 기독교인들이 읽기에는 굉장히 낯설고 불편한 책일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말미에 <도마복음>이 기존 복음서들과 배타적인 위치에 있는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도마복음>이 기존의 복음서들에 내재한 더 깊고 은밀한 내용을 읽어낼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기존의 세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며 의문을 제기하는 제자 도마는 <도마복음>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샘물처럼 마시고 깨달은 자로 그려져 있다. 예수님이 도마를 따로 불러 말씀을 전하시는데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무슨 말씀을 들었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도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님이 내게 하신 말씀 중 하나라도 자네들한테 말하면 자네들은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고, 돌에서 불이 나와 자네들을 삼킬 것일세."(<도마복음> 제13절) 아무래도 <도마복음>이 다른 기독교인들에게 위와 같이 비칠지 모르겠다. 이에 한 구절을 더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추구하는 사람은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찾으면 혼란스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면 놀랄 것입니다. 그런 후에야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도마복음> 제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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