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OST에는 주옥 같은 명곡이 참으로 많습니다. 일본에는 각종 애니메이션 히로인의 목소리 역할을 맡은 성우 팬클럽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기도 하고요. 고등학교 시절, 주변에 '여신님' 성우 팬클럽에 가입했던 친구들이 기억나는군요... 성우들이 콘서트까지 연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깜짝 놀랐지요. 캐릭터의 복장을 그대로 입고 나와 노래를 부른다니, 이거야말로 이 세상에 강림한 캐릭터를 보는 기분일테지요. 

청각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일까요. 밝혀진 바에 따르면 후각이 청각보다 예민하다고 하는데, 저는 조금 예외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때 그 장소에서 들었던 소리만은 어김없이 잊지 않고 생각나거든요. 여기에 그 때 그 냄새까지 겹쳐진다면 더 생생하게 기억나겠지만요. 

작품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나오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드라마라면 상대적으로 쉬운 얘기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문학작품, 특히 만화의 경우 심지어 캐릭터도 아닌 테마곡이 작품보다 더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이런 테마곡이 과연 몇 곡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도 더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이 코너를 열었습니다. 

가장 처음 어떤 곡을 소개할 지, 실은 오래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10초도 안 되서 머리에 떠오른 것은 '愛. おぼえていますか(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1984년 제작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OST 중 한 곡입니다. 애니메이션 역대 최고의 히로인, 린 민메이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곡이기도 하지요.  

아이돌 가수 린 민메이, 히카루, 미사가 벌이는 삼각관계, 젠트라디와 멜트란의 전쟁사, 거대 종족과 인간이 벌이는 전투 설정, 기존 로봇 만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스피디한 매커니즘 등, 다양한  요소를 마크로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극장판'의 명성이 식을 줄 모르는 까닭은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상 핵심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말미를 멋지게 장식했던 테마곡,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조금 있으니 흐린 글씨 처리하겠습니다. 마우스로 긁으면 잘 보여요; 


서로 죽고 죽이고, 치열한 전투가 극에 달하고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한 와중에, 생존한 사람들은 남은 희망에 모든 것을 겁니다.  

'미스 마크로스 선발대회'에서 우승하며 히로인으로 떠오른 린 민메이의 단순한 Love song이, 문화라고는 전혀 가진 적 없이 전쟁만을 일삼던 젠트러디인들에게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린 민메이의 노래가 우주 공간을 가득 메우고, 젠트러디인들은 그녀가 노래하는 영상을 지켜봅니다. 총탄이 빗발치고, 전투 로봇들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에도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내밀며 노래를 부르지요. 

너무 꿈같은 이야기지요?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이게 너무나 적절한 결말이었답니다. 끝부분에서도 이런 대화가 등장하지요.  

-'도대체 그 노래는 뭐였을까.'
-'그냥 흔한 유행가, 사랑 노래지.' 

사족이지만, 가끔은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것이 드물어지는 시기가 있지요.

엔딩까지 말씀드리면 너무 스포일러일테니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마크로스 시리즈에 대해 더 알고 싶다거나 시리즈별 캐릭터가 궁금하신 분은 홈페이지를 한 번 찾아가보세요.



사실, 작화 자체가 80년대 것인지라 지금 보면 다소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 현대식으로 손을 대어 나온 마크로스 히로인들은 개인적으로 민메이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마크로스 팬들은 이를 '민메이의 저주'라고 부르기까지 하지요...) 

앞으로 나올 마크로스 히로인 중 민메이를 초월하는 캐릭터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은...솔직히 앞으로도 반반입니다. 그만큼 마크로스 팬이라면 민메이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겠지요. (혹자는 미사의 손을 더 들어주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늘은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입니다.  

愛·おぼえていますか

今 あなたの 聲が 聞こえる.「ここにおいで」と
지금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요. 「이리로 와」라는

淋しさに 負けそうな わたしに
외로움에 져버릴것만 같은 나에게

今 あなたの 姿が 見える.步いてくる
지금 당신의 모습이 보여요. 걸어오고 있는

目を閉じて 待っている わたしに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昨日まで 淚で くもってた 心は 今……
어제까지 눈물로 흐렸었던 마음은 지금……

おぼえていますか? 目と 目が 合った 時を
기억하고 있나요? 눈과 눈이 마주쳤던 때를

おぼえていますか? 手と 手が 觸れ合った 時
기억하고 있나요? 손과 손이 스쳤던 때

それは 始めての 愛の 旅立ちでした.
그건 처음해본 사랑의 여행이었죠.

I LOVE YOU, SO

今 あなたの 視線 感じる.離れてても
지금 당신의 시선을 느껴요. 떨어져있지만

身體中が 暖かくなるの.
내 마음이 따뜻해져와요.

今 あなたの 愛 信じます.どうぞ 私を
지금 당신의 사랑 믿어요. 부디 나를

遠くから 見守って 下さい.
멀리서 지켜봐 주세요.

昨日まで 淚で くもってた 世界は 今……
어제까지 눈물로 흐렸었던 세상은 지금……

おぼえていますか? 目と 目が 合った 時を
기억하고 있나요? 눈과 눈이 마주쳤던 때를

おぼえていますか? 手と 手が 觸れ合った 時
기억하고 있나요? 손과 손이 스쳤던 때

それは 始めての 愛の 旅立ちでした.
그건 처음해본 사랑의 여행이었죠.

I LOVE YOU, SO

もう ひとりぼっちじゃない.あなたが いるから
더이상 외톨이가 아니야. 당신이 있으니까

おぼえていますか? 目と 目が 合った 時を
기억하고 있나요? 눈과 눈이 마주쳤던 때를

おぼえていますか? 手と 手が 觸れ合った 時
기억하고 있나요? 손과 손이 스쳤던 때

それは 始めての 愛の 旅立ちでした.
그건 처음해본 사랑의 여행이었죠.

I LOVE YOU,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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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zer 2009-04-10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리뷰네요. 마크로스의 극성팬중 한사람으로서 기분좋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이작품은 80~90년대의 애니팬들에게는 아련한 향수이자 전설입니다. 같은 시기에 발매되었던 수많은 영상물중, 이 작품에 감명받아 일본애니메이션의 작품성을 인정하고 팬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최근 화제가된 영화 낮술의 감독이나 우아한 세계의 감독...작업책상위에 이 작품의 설정자료집을 놓아둔 트랜스포머의 그래픽제작진...팬이라고 대놓고 말했다던 스타크래프트2의 제작진...그외의 많은 국내외 예술인들이 이 작품의 이름을 언급하고 팬이라고 말하는지...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내었다는 이 작품은 동시대를 살아갔던 세계인의 가슴에 명작으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SarahKim 2009-04-10 09:07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들어 마크로스 극성팬, 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봐요. 전설은 괜히 전설이 아니라는 것을 존재 자체로 보여주는 애니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