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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평점 :
책을 읽기 전에 많이 망설였다.
이 책의 저자와 제목만 봐도
'내가 과연 집중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책을 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그리스인인데 어째서 2천 년이 지난 나에게도 이렇게 익숙한 사람인가.
그의 책을 2020년의 내가 읽게 되다니 생각해보면 대단하다는 단어만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등등 학창시절에 무언가 배우고 외우고 시험까지 봤던 기억이 나는데 정작 책을 마주하고 나니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과 철학, 그리스 말고는 아무 기억도 나질 않았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가, 뇌세포가 죽은 것인가. 사실 배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닌가.
수사학이란 단어도 낯설었다.
수사학. 수사학이 뭐지? 이런 학문이 있어요?? 우.. 웅변대회 같은 건가요??? 아아아.
수사학 : 문학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효과적ㆍ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
책을 읽고 나니 첫 장에서 저자가 언급하듯이
수사학이라고 어렵게 명명되어 있지만 이는 특정 학문 분과에 속하지는 않지만,
유용한 기술인 것이다.
청중을, 그리고 재판관과 배심원들을 나와 내 편에 유리하도록 이끄는 기술.
page 15, 수사학의 본질
이 책은 수사학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수사학을 유용하게 쓰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며
어떻게 말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 편에게 이로운지 알려준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수사학의 유형에도 나오듯이 현대에 수사학이 필요한 사람은
정치인, 법률가,언론인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넓은 시각으로 보자면 말과 글을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에게는 유리하게, 상대에게는 불리하게.
혹시 상대가 말로 공격해온다면 그것을 도리에 나에게 유리하게.
이 공식이 필요할 것이므로
면접 보는 취준생, 집주인 또는 건물주와 싸워야 하는 세입자,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자신의 현 상황을 설득해야 하는 학생,
조별 과제에서 느닷없이 발표자로 뽑힌 대학생, 광고주를 설득해야 하는 홍길동 팀장,
어느 당을 지지하는 유튜버,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 싸워야 하는 어딘가의 그 누군가 등등
자신을 지켜야 하는 모두에게 어느 정도 필요한 기술이다.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은 화자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고,
어떤 것은 청중의 심리 상태와,
어떤 것은 뭔가를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 자체에 관한 것이다.
>>> page 17, 제1권 제2장 수사학의 정의 중에서.
따라서 연설가는 자기가 칭송하려는 사람이 지닌 것과 아주 비슷하면서 최고로 고결한 것을 그 사람에게 돌려야 한다.
예컨대 성미가 급해서 화를 잘 내고 윗사람에게 흥분하는 사람에게는 솔직한 사람이라고 하고,
오만한 사람은 포부가 크고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
>>> page 63, 제1권 제9장 선전을 위한 연설 중에서.
수사학이 무엇인지만 알면 이제 어떻게 해야 말을 잘하는지 바로 말해줘도 될 텐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며 세분화하여 설명을 한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유형을 보자마자 현대의 정치인, 법률가, 언론인이 떠오르는 것이다.
큰 틀에서 보면 청중을 설득시키는 것이 절실한 집단은 이 세 집단이 맞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그리고 이 세 집단이 2천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자신의 편에 서라고 설득하는 것을 보면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앞으로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중요한 요소임을 절로 깨닫게 된다.
page 27, 수사학의 유형
조언을 위한 연설
법정에서의 변론
선전을 위한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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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언을 위한 연설"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들과 관련해서 어떤 것을 권유하거나 만류하기 위해 대중 집회에서 행하는 정치 연설을 가리킨다. "선전을 위한 연설"은 제전이나 행사에서 신들이나 인물들을 칭송하거나 비난하는 연설이다.
>>> page 27, 제1권 제3장 수사학의 유형 중 각주.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이라 그런지 역자의 친절함이다.
기술이라고는 하지만 하나의 학문처럼 다루어지는 이 책의 내용은 예상대로 복잡하기는 하다.
내용으로만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많은 예시들과 읽는 사람이 이해할 거라고 (2020년의 나까지 배려하진 않았겠지만)
써 내려간 간결한 문장들이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만 모르는 내용인 건가.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역자가 각주를 달아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준다.
그리스 신화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용한 많은 책, 인물, 속담 등등을 각주와 함께 읽고 나면
무엇을 설명하고자 했는지 이해도 쉽고 재미도 더해진다.
내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래와 같다면,
어떤 것과 반대되는 것이 더 중요하고, 뭔가가 없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그 어떤 것은 더 중요하다.
>>> page 50, 제1권 제7장 상대적 이로움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좀 더 쉬운 말로 이해시켜준다.
가령, 미덕은 악덕이 아닌 것보다 더 중요하고,
악덕은 미덕이 아닌 것보다 더 중요하다.
미덕과 악덕은 목표인 반면에, 악덕이 아닌 것과 미덕이 아닌 것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 page 50, 제1권 제7장 상대적 이로움 중에서.
또한 많은 예시들의 상당수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각주와 함께 할 때 더더욱.
이것이 시인 안티폰이 디오니시오스의 명령으로 처형당하기 직전에,
자기와 함께 사형당할 자들이 성문을 지나면서 얼굴을 가리는 것을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다.
"당신들은 왜 얼굴을 가리는가? 내일 이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인가?
>>> page 134, 제2권 제6장 수치심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위대한 철학자이며 여전히 살아있는 지성으로 느껴지는 것은
2천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마치 어제 쓰인 내용같이
기원전 한 사람의 통찰력이 이 정도인가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수사학의 각 유형에 따른 자세한 설명과 그 설명을 바탕으로 청중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 감정 그리고 청중의 상태까지 말하고 있어서이다.
그리하여 행복이란 무엇이며 좋은 것과 이로운 것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즐거움을 얻는지 알아야
우리 편에게 이로운 쪽으로 조언할 수 있고
변론을 하려면 범죄자들의 심리 상태를 알아야 한다.
청중의 심리 상태 즉, 무엇에 분노하는지
어느 부분에 연민을 느끼고 그것이 의분과 어떠한 관계인지 알아야
누군가를 칭송하거나 비난하여 우리 편에게 유리하게 설득할 수 있다.
이런 설명들은 지금 보아도 적용되지 못할 것이 전혀 없다.
다만, 읽다 보면 '맞아. 그리스인이었지. 하는 부분이 훅 느껴지는데
아래와 같이 남자와 여자의 평가 라든가 노인에 대한 평가 등을 보면서 그랬다.
거부감이 들거나 이해가 안 될 부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원전에 쓰인 책을 보고 있다는 것을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본성적으로 더 뛰어난 자들의 미덕과 행위가 더 고결한 것이다. 예컨대 남자의 미덕과 행위가 여자의 것보다 더 고결하다.
>>> page 62, 제1권 제9장 선전을 위한 연설 중에서.
노인은 인생의 전성기가 지났기 때문에 대체로 청년과 정반대되는 특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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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악의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나쁜 쪽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실제로 나쁜 일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불신하는 것이다.
>>> page 154, 제2권 제13장 노년기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국가와 가족, 친구들
즉 나의 편에 있는 자들을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될수록
좋은 연설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청중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하는데
특히나 친구에 대해서 많은 강조를 한다.
친근함과 편안함 그리고 신뢰가 결국은 친구 관계와 같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연설가의 관점으로 설명한 것이지만 굉장히 보편적이고 여전히 변함없이 통하는 이야기라 그런지
순간순간의 글귀들이 우리가 한편일 때의 나의 자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우리는 자기 곁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친구에 대해 한결같은 우정을 드러내는 자를 좋아한다.
죽은 친구를 못 잊어 그리워하는 자를 누구나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는 친구를 너무나 좋아하고 끝까지 버리지 않는 자를 좋아한다.
가장 친근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 page 122, 제2권 제4장 우의와 적의 중에서.
제1권, 2권 동안 청중을 어떻게 사로잡는가를 열심히 설명해 준 뒤 끝나는 줄 알았는데
- 국가와 법 그리고 인간에 대한 본질 파악까지
우리가 알아야 할 건 모두 나왔는데 무엇이 더 남았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문체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청중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고 치자. 그런데 말을 하고 글을 써서 전달해야 하는데
순서도 없이 너저분하게 말한다면 모든 내용을 알았다 해도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즉, 요리로 치자면 필요한 재료와 구하는 방법, 재료의 손질 방법, 요리 순서 등을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플레이팅까지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문체에 관해 다룰 것이다. 연설가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도 말아야 하는데,
이는 청중이 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문체"로 번역한 그리스어 '렉시스'는 "문체, 어법, 화법"등과 같은 표현 방식을 가리킨다.
>>> page 223, 제3권 제1장 문체에 관한 서론적인 개관 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문체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에 설명에 더해
그는 이미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이 제대로 전달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비록 이 책이 연설을 위한 책은 아니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던 수사학이 명료하고 정확하게, 2천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적절하고 세련되게 설명되어 있질 않은가.
그가 이끄는 대로 나는 이 책을 잘 읽어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말로 위대한 철학자이자 지성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득의 기술이 이미 2천 년 전에 모두 정리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다니.
이 기술 안에 있는 대부분의 내용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요한 것이라니.
단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납득시켜버리다니.
무려 2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수사학의 필요성을 나에게 설득시키다니.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대 학문의 완성자 라는 말은 틀림이 없다.
※ 위의 글은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해당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