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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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가지만

나에게는 영국 작가 그리고 크리스마스 캐럴의 작가로만 기억되어 있을 뿐이고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제목 또한 생소한 듯 익숙한 듯, 너무 유명해서 마치 읽은 듯한 그 기분.

아마도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찾아서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한 말이지만 대단한 작가의 대단한 책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틈틈이 나눠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첫 장을 읽기 시작하고는 하루 종일 책을 붙잡아서 결국 마지막 장까지 넘기게 하는 힘.

 

독서광이 아닌 나도 푹 빠져서 읽었으니 누구라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럴 테지.

 

책을 받자마자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두툼한 두께 그리고 차례에 빼곡히 적혀있는 각 장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었다.

단지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두꺼울 일인가.

이렇게까지 세세하고 단호하게 적어내려간 차례가 있었던가.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두꺼운 이 책의 이야기도 올리버의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었으며

이러한 차례야말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드는 친절한 이정표라는 것이었다.

 

작가는 마치 나에게 '이건 꼭 들어봐야 할 이야기'라는 듯이

'어느 날 우연히 내가 알게 된 올리버라는 소년에 대한 이야기'라는 듯이

그리고 '그 소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를 둘러싼 사람들도 알게되었다'는 듯이

그래서 모든 상황을 살펴보니 '결국 그렇게 된 것이다.'라는 듯이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각본이 내 상상 속에서 연극 무대로 올려진다.

 

자 봐봐.  가난과 함께 시작된 비극이 사방에 널려있고 이건 진실이지. 여기 올리버를 보라고.

하지만 현실이 아무리 잔인해도 결국 선한 마음이 이기게 될 거야. 

그래서 네가 어디에 있든 너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선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게 바로 희망이지.

 

 

나는 모든 역경에서 살아남아 결국 승리하는 선의 원리를 소년 올리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 page 10  저자 서문 중.

 

올리버 트위스트

어찌 된 일인지 어느 시골마을 구빈원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 아이.  

힘겹게 태어났지만 결국 혼자가 된 아이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구빈원의 고아라는 낙인은

책을 읽는 나에게도 이 아이의 삶이 너무나도 고달프고 서럽고 불행해서

비참한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들 지경이라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올리버가 태어난 이후로  끔찍한 고아농장에서 맞이하게 된 9살 생일까지 전혀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작가가 친절하게 풍자와 해학을 가득 담아 써주었기 때문에 한숨을 쉬면서도 계속 읽어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방식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노부인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끝을 모를 정도로 아이들의 몫을 뜯어낼 수 있을 만큼 뜯어내고 있었는데,

대단한 경험주의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 page 24

       1부 2장 '올리버 트위스트의 성장과 교육, 숙식을 둘러싼 특징' 중에서.

 


올리버 앞에 등장하는 평범하고도 자비로운 이웃들은, 아니 높으신 분들은 

늘 올리버를 이용하고 학대하고서 되려 큰 소리를 쳤다. 

아무런 방패막이도 없이 홀로 견뎌야 했던 어리고 약하기만 한 올리버는

굶주림으로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고 매를 맞았고

비참한 곳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다고 눈물로 호소했기 때문에 버려졌다.

 

책 표지 뒷면의 [1834년 시행된 신 구빈법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비판했다.] 라는 말처럼

올리버는 구빈법을 통해 목숨을 연명했는지는 몰라도 계속해서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런 어린 아이에게조차 일말의 동정심이 없던 신사들 

그리고 구빈원 사람들과 고아농장 아이들에게 만은 최고 권력자처럼 굴던 '말단' 교구관

올리버에게 배은망덕하다거나 문제아라며 쏟아내던 모든 비난은 말이 되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구빈원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설'일뿐이니 뭘 기대할 수 있을까.

 

올리버는 굴뚝 청소부가 되거나 배를 타서 허드렛일을 할 수도 있었고

장의사의 어엿한 보조자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무엇이 되었든 오래 살지 못했을 거였기 때문에 

마침내 용감하게 도망치는 장면이 나왔을 때 열렬히 응원하게 되었다. 

그래.  어서 길을 떠나. 이보다 나빠질 수는 없을거야.  라고.

 

아이가 낮은 쪽문 위로 기어올라서 작은 두 팔로 올리버의 목을 감으며 작별 인사를 했다.

"잘 가! 하느님이 지켜주실거야!"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축복은 올리버가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이후로 온갖 고난과 역경, 변화 속에서도 올리버는 이 축복의 말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 page 91

       1부 7장 '계속 반항하는 올리버' 중에서.

 

 

올리버는 런던으로 갔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물론 어느 시골마을 구빈원의 고아가 런던으로 갔다고 느닷없이 번듯한 직업이 생기거나 

늘 꿈꿔오던 가정이 생긴다거나 앞날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이 기다리지는 않았다.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런던 빈민가에서 영리한 소매치기가 될 기회 정도를 얻게 되는 것뿐이었다.

 

올리버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동료들의 소굴 외에는 갈 곳이 없었고

우연히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브라운로씨를 만나게 되어 좀 더 나은 삶을 

최소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타락하지 않도록 살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다시 그들 무리의 손아귀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아 이제 올리버는 런던 빈민가 그 뒷골목을 떠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올리버의 모험이 구원과 타락 사이를 오가면서

'말단'교구관과 브라운로씨, 페이긴 무리들이 등장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게 되는데 

중간중간 작가는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아직 남은 이야기를 향해 어서 따라오라는 듯이 

친철한 설명을 잊지 않는다.   정신 바짝 차리고 올리버를 둘러싼 이야기에 집중하라고.

 

이렇게 장면을 전환하려는 데에는 훌륭하고 실질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독자들이

당연히 하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구태여 독자들을 이 여정에 초대한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 page 193 

      1부 17장   '올리버의 불운이 계속되는 가운데, 

                         올리버의 평판을 나쁘게 만들 위대한 인물이 런던에 나타나다' 중에서.

 

 

곧 1부가 막을 내린다. 내내 가엾은 올리버가 처해진 상황은 안타까웠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타락하지 않은 올리버가 맞이하게 되는 구원은 손길이 2부로 이어진다.

 

1부를 지나는 동안 그 누구도 올리버에게 타락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지 않았고

오히려 잔인한 본성 그대로를 누구라도 올리버에게 쏟아냈으니

세상에 대한 복수나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라도 충분히 문제아가 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선이라는 듯이 올리버는 타락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노력했다.

 

"오, 제발 절 보내주세요! 그냥 도망가서 들판에서 죽게 내버려 두세요.

다시는 런던 근처에도 안 올게요. 절대 다시는요! 

오, 제발 절 가엾게 여기셔서 도둑질만은 시키지 말아 주세요. 

천국에 사는 빛나는 천사님들을 생각해서라도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 page 251 

       1부 22장 '도둑질' 중에서.

 

올리버가 그동안 사람들에게 당해왔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깟 도둑질은 대수도 아니지 않나.라고 타락한 나는 생각했다.

모두가 문제아라고 손가락질하면 결코 사실이 아니더라도 차라리 문제아가 되는 편이 쉬울 텐데.

 

올리버는 순수함과 선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의 손길에 닿았다.

과거를 털어놓을 수 있었고 그 말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행복한 날들이 흘러갔다. 낮에는 평화롭고 고요했고, 밤에는 무섭지도 걱정스럽지도 않았다.

비참한 감방에서 괴로워하거나 비열한 인간들과 어울릴 필요도 없었고,

그저 즐겁고 행복한 생각만 하면 되었다.

>>> page 357 

       2부 9장 ' 올리버가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 시작하게 된

                        행복한 생활에 대하여' 중에서.

 

2부에서 불안하지만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져서

곧 3부에서는 페이긴 무리를 따돌리고 건강한 청년으로 자란 올리버의 이야기가 나오려나 했는데

뜻하지 않은 비밀들이 3부에서 펼쳐지고 그동안 펼쳐진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진다.

 

2부에서도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3부에서 페이긴 무리의 낸시가 결정적으로 올리버를 도와주고 상황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아마도 올리버가 구원받지 못했다면 낸시처럼 살게 되지 않았을까.

 

"돌아갈래요. 돌아가야만 해요. 그 이유는...

아, 당신 같은 순진한 아가씨에게 어떻게 설명을 할까요?

내가 말한 남자들 중에 가장 절박한 처지에 있는 남자가 있는데, 그를 떠날 수 없기 때문이죠.

내가 지금의 삶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해도 안 된답니다." 낸시가 말했다.

>>> page 452

       3부  3장 '앞장에서 이어지는 기이한 대화 장면' 중에서

 

올리버는 선한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갖게 되었고

악한 사람들은 각자의 욕심에 걸맞은 마무리를 가졌기 때문에

나도 마음 편하게 마지막 장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통렬한 사회 비판이 담긴 책인데 동화 같은 마무리라니.

 

선이 승리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던 작가의 말 그대로였다.

 

다만, 올리버가 겪은 불행들이 너무나 먼 과거의 이야기 같지 않고

머나먼 나라에서만 일어났을 것 같은 생소한 이야기 같지 않고

어쩐지 지금도 어느 마을의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을 것 같다.

구빈원의 고아. 에서 이름만 바뀐 그 무엇의 비극이 여전해서인가.

 

이 책은 이렇게나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텐데

작가가 비판하고자 했던 당시의 현실보다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는 것을 보니

선과 악의 싸움에서 아직도 선은 승리하지 못하고 있나보다. 역경 속에 있는거지.

작가의 통렬한 사회 비판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통하고 있다니.

 

아. 책을 참 재미나게 읽었는데 결말을 곱씹다보니 갑자기 씁쓸한 맛이 나네.





※ 위의 글은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해당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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