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배신 스토리콜렉터 84
로렌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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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독자를 사로잡은 웰메이드 여성 심리 스릴러! 라는 설명을 보자마자 

어머, 이건 꼭 읽어야 해! 를 외치게 만든 책이었다.

 

10년 전 알게 된 범죄수사물 미드를 여전히 흥미진진하게 보고 

토요일 밤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챙겨보며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귀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며 보더라도 서늘한 영화를 찾아보게 되는 나에게

이런 장르의 책은. 제목과 책의 간략한 설명만으로도 너무나 유혹적이다.

 

최근 후덥지근한 날씨까지 더해졌기 때문에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어느 카페에서 얼음이 가득 든 커피와 함께 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이 책의 즐거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실제로 공부 삼매경에 빠진 이들에 섞여서 라떼 한 잔을 들고 첫 장을 열며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책을 받은 후 첫인상과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의 소감이 일치했다.

책 표지와 제목이 내용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완벽한. 배신. 오래된 문고리. 좁은 문틈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햇살. 

 

병원에 부상을 당한 채 누워있는 테스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내용은 단순한 편이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각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도 별로 없다.

그저 테스를 따라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테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테스가 죽은 남편을 향해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읽고 있는 구조라서 

그녀의 심리 묘사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매 순간 죽은 남편에게 머릿속으로 편지를 쓰듯이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고 

때로는 그녀의 상상 속 그의 대답까지 더해져서 

책 내용의 대부분인  테스의 슬픔이나 우울, 두려움 등에 대한 묘사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남편 마크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었고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진 나머지 하나뿐인 아들과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간다.

그녀가 의지할 곳은 엄마도 오빠도 아니다. 남편의 형은 더더욱 아니다.

우연히 알게 된 사별 전문 상담사인 셸리만이 테스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셸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방법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슬픔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아들 제이미를 위해서 버텨야 한다.

나아지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돌아보니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빼앗길 위기에서 제이미만큼은 지켜야 하는데 병원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테스는 책에서도 나오지만, 매사 걱정이 너무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이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기는 했지만  남편이 죽기 전에도 나에게는 그다지 독립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돈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남편에게만 의지하고 아이를 키울 때도 온갖 걱정 만을 늘어놓으며 과잉보호하는 사람.

 

제이미가 소파에서 뛰어내리다 그만 커피 탁자 모서리에 얼굴을 찧는 바람에 온 사방에 피를 흘리며 통곡과 딸꾹질을 동시에 하고 있었지. 난 공황상태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당신 회사에 전화했어.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어쩌나 허둥대면서 말이야.

그 애는 심지어 꿰맬 필요도 없었어, 테시.

>>> page 80 중에서.

 

남편이 지금 죽지 않았다고 해도 살면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어머니는 강하다는데 테스, 당신은 대체 왜?

책을 1/3쯤 읽을 때만 해도 테스의 그런 유약한 점에 공감할 수가 없고 짜증이 날 정도였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얘기 모르나.  아 이제 그만 울고 정신을 차려서 당신의 아들을 돌보라고!!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니. 왜 주변 도움도 다 거절하고 모든 것을 엉망을 만들고 있는 거야?

 

그녀에 대한 심리 묘사가 생생해질수록 끝도 없는 슬픔에 허우적거리는 테스와 함께 

나도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며 책의 내용도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다. 지친다.

 

오늘 아침 이미 교복으로 갈아입고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가 내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걸 보고 그 애가 지은 그 실망스러운 표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정말 끔찍했어, 마크. 한마디도 없이 뒤돌아 방을 도로 나가는 제이미의 그 표정을, 그 눈빛을 당신도 보았어야 해. 그 애는 날 경멸했어. 내가 낳은 아들이.

>>> page 210 중에서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도, 아이를 낳아 기른 경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마도 흔히 내가 봐왔던 책이나 드라마에는

어떤 고난과 역경도 헤쳐나가는 억척스러운 어머니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약해빠진 테스보다는 죽은 그녀의 남편과 그녀를 지켜보는 아이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슬픔과 상실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불쌍한 테스.  당신의 그 슬픔과 상실의 크기를 내가 어떻게 처음부터 이해할 수가 있었겠어요. 

 

초반에 그녀의 감정에 치우치다 보니 뒤로 갈수록 문득 궁금해지게 되는데.

이 상황에 도대체 스릴러, 서스펜스는 어디에 있는 거지? 

이러다가 그냥 끝나버리는 건 아니겠지? 

너무나도 슬픈 나머지 자신의 아들을 죽이게 되나?

혹시 테스가 슬픔에 빠져서 모두를 다 죽이고 연쇄살인마가 되는 건가? 그런 건가?

갑자기 친구가 된 셸리가 사실은 죽은 남편의 내연녀였나? 그래서 복수를 하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이건 스릴러는 아닌 것 같은데요.

 

슬픔-의문-두려움으로 이어지며 1/2을 읽고 2/3를 읽고 마지막 반전까지 마주하고 나서야 

어? 벌써 다 읽었나? 했다.

 

반전은,

어쩌면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초반에 짐작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라고 예상했던 점이 있을 것이다.  에이 다 뻔한 얘기구만 이라고 미리 단정 짓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마지막 결말을 읽었을 때 진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반전이 담긴 책이라고 해서 그 지점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매혹적인 스릴러, 숨 막히는 반전, 서스펜스  등등의 복잡한 설명보다는 탁월한 심리물이 딱 맞는 것 같다.

서늘한 공포를 예상하거나 빠른 전개를 원한다면 초반에는 집중력이 좀 떨어질 수도 있지만

희한하게 술술 잘 읽힌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롤러코스터를 타고 한 바튀 돌아온 기분이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긴장감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타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일 수 있다.

그래도 역시 타고나면 누구라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그 매력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소설이었다.


 

 

아, 지나가는 말이지만.

좋은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굳이 '여성' 부분을 따로 떼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테스가 여자이고 아내, 엄마이긴 하지만

이건 '여성인 테스'에 대한 이야기이지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작가 특유의 문체라는 것이 있지만 여성 작가, 여성 심리물 등등으로 성별로 한정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제는 여자가 작가로 불리는 것이 특별한 시대가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상상할 수조차 없는 슬픔일 테니까 말이다.

  

 

*** 영국에는 사별 전문 상담사라는 직업이 있나 보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너무 부럽다.





※ 위의 글은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해당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쓴 개인적인 소감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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