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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학의 탄생 - 철학, 종교와 충돌하다
미셀 옹프레 지음, 강주헌 옮김 / 모티브북 / 2006년 6월
평점 :
흔히, 여럿이 모인 자리에 꼭 피해야 할 이야기가 종교와 정치 이야기라고 한다. 그만큼 종교와 정치 이야기는 논쟁으로 되기 쉽고, 곧 주먹질이 되기도 하고 급기야는 피를 봐야 끝이 나기 쉽상이라는 뜻일 거다. 특히 종교의 경우 논쟁은 더욱 거세지기 일쑤다. 그래서 역으로 이런 논쟁을 잘 활용하면 한몫 잡기도 쉬울 것인데, 최근 상영금지 논쟁이 있었던 <다빈치코드>도 이런 경우라고 생각된다. 사실 나는 <다빈치코드>를 가지고 기독교도들이 날뛰는 이유 자체에 전혀 동감을 하지 못했다. 그다지 훌륭할 것 같지도 않은 픽션을 두고 바르르 하는 기독교도들 때문에 괜히 책만 더 잘 팔릴테니, 그게 싫으면 조용히 있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여튼 상황은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의 순풍"을 타고 책이며 영화는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또 기독교인들이 들고 일어날 책이구먼"이었다. 예전에 동아일보사에서 낸 <예수는 신화다>도 그랬고, 현암사에서 나온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때도 기독교 보수 세력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고, 서명운동인가 뭔가까지 해서는 결국 이 둘 중 어느 책인가는 절판까지 되었었다.(물론 팔릴만큼 팔린 다음이었지만.) 미셀 옹프레가 쓴 이 책, <무신학의 탄생> 또한 기독교도들이 들고 일어나기에 충분할 만큼 자극적인 책이다. -물론 이 책은 기독교만이 아니라 이슬람교와 유대교까지 포함하여 유일신교를 다루고 있다. - 이러한 "자극성"은 독자들을 끄는 매력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번역이 깔끔하고 문장이 매끄러워서 술술 읽히고, 원저자의 능력이겠지만 문장이 발랄하고 톡톡 튀기 때문에 쉽게 완독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책에 "자극적"인 것 이상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하고 있는 비판은 사실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비판이다. 기독교의 발생과 관련해서 예수나 예수에 대해 기록한 신약성서를 뒷받침해줄 사료들이나 사본들이 없다는 것, 그리고 대개 예수의 실존을 입증한다고 하는 사료들 또한 후대 기독 교인들의 첨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등 이 책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이미 무수하게 다루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기독교가 공인되고 그 전통을 확고히 해 가면서 무수한 폐해를 남긴 사실도 새로울 것이 없다. 기독교가 인류 역사에 얼마나 심각한 "죄악"들을 저질렀느냐는 <기독교 죄악사> (조찬선 지음, 평단문화사, 상하 두권짜리)만 보아도 이 책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허점이라는 뜻은 아니다. 해 아래 무슨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 수 있겠으며, 더욱이 아무리 목청껏 이야기해봐야 도저히 개선의 여지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이 종교의 무법지대를 비판하기에는 "하늘을 두루마리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모자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으로 이야기하자면 기독교는 아직도 욕먹어 싼 부분이 많다.
그런데 내가 아쉬운 것은 그 비판의 수준과 정당성 면에 있다. 바울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상당히 거슬린다.
"바울의 증세를 보면 어렵지 않게 의학적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는 듯 하다. 그밖에도 낙상, 히스테리성 실명 또는 일시적 흑내장, 감각기능의 일시적 중지로 인한 사흘 동안의 청각과 후각의 상실, 거짓말을 늘어놓는 과장증, 감동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연극증이나 도덕적 과시증 등등. 이런 발작 증세들은 정신분석학 입문서에서 신경증과 관련한 내용 중 히스테리를 설명한 부분과 비슷하다." (188쪽)
" 성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갈 수 없었던 바울은 성과 관련된 모든 것이 덧없다고 선언했다. 이런 선언을 자신에게만 적용시키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강요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성욕을 죽이라고 강요해서라도 세상 사람들과 같아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192쪽)
바울이 금욕적인 설교들을 했었고, 때로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한 것은 물론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바울이 금욕적 설교를 한 것은 "바울이 성불구이기 때문이다" 식의 비판이 과연 정당할까? 저자에게 조금 더 정당하고 "품위 있는" 비판을 요구한다면 나의 과욕일까? 바울이 어떠한 상황에서 여성에 대해 비하적인 발언을 하고, 인간의 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그것이 기독교 전통 속에 여성과 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뿌리내리게 한 역사적 과정이 어떠했는지, 좀더 진지한 평가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바울도 바울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거슬린 부분은 9.11 이후, 아니 그 전에도 물론이지만 이슬람 국가들과 기독교 국가들 간의 반목, 전쟁, 이어지는 테러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다.
"일신교는(기독교는 물론 유대교, 이슬람교도 포함함) 죽음으로 사람들을 위협한다. 유대인은 가나안 사람들의 피로 칼을 적셨고, 무슬림들은 민간항공기를 폭탄 삼아 뉴욕을 때렸고, 기독교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고, 하느님에게 축복받은 행위였다. 특히 하느님의 이름을 빙자한 사람들이 앞장서서 그런 행위를 감싸고 나섰다." (243쪽)
테러를 벌이는 이슬람 세력들도, 테러를 예방한답시고 전쟁을 벌이는 미국도 다들 종교를 내걸고 하나님을 들먹이고는 있지만, 그 꿍꿍이들 뒤에 숨겨진 속셈은 사실 종교도 하나님도 경전도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을 하면서 내놓은 "이토록 몹쓸 폐해만을 낳는 종교, 기독교에 맞서 전투적인 무신론자가 되자"는 저자의 주장은 등가려운데 옷위를 긁는 것 같이 감질난다.
이 책이 이래저래 아쉬운 점이 있다고 투덜거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소위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정말 아직도 지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도 하나님 핑계대고 성경을 핑계대는, 딱 이 책의 저자에게 욕먹어 싼 기독교가 주를 이루고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