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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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타쿠 히데오의 소설에는 해악이 묻어있다. 심각한 이야기를 웃음과 재치로 승화시키는 그에게서 인생의 내공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거대 신문사의 총수이며, 명문 야구단의 구단주로서 엄청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지만 가진 것이 너무 많기에 죽음이 두려운 미쓰오.
IT산업의 기린아로 거대한 부를 일구었지만, 너무 합리적으로 자신을 채찍질 하다 보니 히라가나까지 쓸 수 없게 되어 버린 안퐁맨 다카아키
화려한 TV속의 주인공으로 안티에이징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먹은 것을 운동으로 다 소진해야만 심리적 안정을 찾는 카리스마 여배우 가오루
거대한 건설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면장이 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싸우는 센주시마의 면장 선거

모든 것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평가절하하기에는 왠지 마음 한 구석에서 이 이야기 신문 구석에서 본듯한 뉴스인데… 라는 거부감이 밀려온다.
특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하는 이라부의 생각에서는 아, 그래서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그토록 실천하시려고 했구나라는
숭고한 깨달음까지 얻게 되었다.
나의 고민도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니, 맞아. 라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욕심을 버리면 간단하네. 라는 말을 건네보니, 나라는 녀석은 그것은 아니지라는 대답을 한다. 그래서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은 범인(凡人)의 경지를 벗어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오타쿠 히데오는 인간적인 작가다. 무소유를 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속 시원하게 해주니까 말이다.

무소유를 부르짖지만,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새 모델로 교체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솟아난다. 통화음질에도 이상 없고, 문자 수신에도 문제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가지고 싶다.
핸드폰, 언제부터인가 나는 전화번호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적인 논점에서 말하자면,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고 간단하게 버튼 몇 번 누르면 전화번호를 찾아 낼 수 있기에 일부러 경제적 이익이 되지도 않는 전화번호를 귀찮게 외울 필요가 없다. 차라리 그 시간과 노력으로 금리라던가, 환율 숫자, 삼성전자의 당기 순이익을 외우는 것이 효율적이고 현대인 같아 보인다. 안퐁맨이 딱 이런 생각으로 무장된 실력자다.
최근 유행하는 병중에 디지털 치매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의 범람으로 우리는 암기라는 노동에서 해방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히 살아가는 게 행복한 일일까? 직장인에게 스테그 플레이션이 발생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의 힘으로 인해 일은 더 많아지는 데 비해, 인력에 대한 가치는 떨어져 월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숨가쁘게 살아가는 데, 생활은 더 팍팍해 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가치, 실리, 스피드를 부르짖다가 안퐁맨은 히라가나를 잊어버렸다. 어쩌면 안퐁맨은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자신의 살아가는 의미까지 잊어버리고 성공을 향해 달리는 경주마와 같은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왠지 내 주위에 승진과 부자가 되기 위해 목숨 걸고 달리는 사람들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도 제발 이라부의 손길이 미치기를

카리스마 연예인, 그들은 마치 호수 위의 백조 같다. 우아한 겉모습과 달리 물 아래에서는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가오루도 안티에이징으로 구축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살이 찌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이는 나와 개인적인 나의 괴리라고 할까?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사회적인 나를 만들게 된다. 모두 다 유능하고, 유머도 있으며, 지적이고, 깔끔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삶이 피곤하다. 돈이 없어 집에 걸어가야 할 지경이 되더라도 절대 없는 티를 내서는 안되고, 아는 게 쥐뿔 없어도 최소한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은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겉으로 보이는 나와 개인적으로 원하는 나의 괴리감을 항상 끌어 안고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
편해지기 위해서는? 간단하다. 법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살면 된다.
이라부가 가오루가 처방한 방법처럼 말이다. 먹고 싶으면 마음껏 먹으세요. 그리고 살찌면 되지요!

면장선거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선거철마다 나오는 신문의 뉴스와 너무 닮았다. 정경유착, 뇌물 선거, 상대방 비방, 핵심 인물 포섭. 이러한 기법들은 한국에 사는 국민들이라면 너무 친숙한 기법들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마약과 같다고 한다. 한 번 빠져들면 천국을 보게 되고 절대로 현실로 회귀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하긴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 평범한 소시민이 된다면 그것은 치욕과도 같은 느낌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된다.
우리의 이라부는 솔로몬의 해법을 제시한다. 장대에 꽂힌 깃발 빼앗기 게임. 얼마나 공정한 게임인가.
인간은 맨 몸으로 경쟁하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다. 그래서 권투가 가장 인간다운 스포츠라고 했나 보다.
그런데 설마 우리의 국회위원들도 면장선거를 읽었나? 왜 맨날 국회의사당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 양당이 몸싸움을 하는 지..

우리는 다양한 고민을 마음 속에 꽉꽉 채워가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고민이 넘쳐나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병이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아프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간단하다. 마음이 시키는 데로,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살아가면 된다. 정말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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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법칙 - 명품 인생을 만드는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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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에 나왔던 책인데, 지금에야 읽게 되었다.
<10년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동서양을 막론하고 커다란 성공법칙으로 전파되게 되었다.
대표적인 책이 말콤글레드웰의 아웃라이어, 데니얼코일의 텔런트코드 등이다.
물론 우리의 선조들은 벌써 이 사실을 알고 <한 우물을 파라>라고 말했지만, 과학적인 근거와 다양한 사례 수집이 되지 못해 속담으로 밖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10년의 법칙은 무척이나 단순한 이론이지만 실천하기에는 어려운 법칙이다.
10년의 법칙의 요점은 하나의 일에 꾸준히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1만 시간이 10년이라는 세월이 나오고 하루에 보통 3시간 꼴이다.
그래서 세심한 일본인 작가 니시무라 아키라는 <퇴근 후 3시간>이라는 책으로 10년의 법칙을 달리 표현했다.
이 책이 이야기는 제목에 모든 것이 다 표현되어 있다. 10년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라.
물론 전제 조건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공병호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공병호라는 작가에서 식상함을 느끼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공병호라는 작가가 나에게는 의미 없는 작가가 되어 버렸다.

1인 기업을 주창하고 <자기경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고 주말을 효과적으로 보내라는 메시지의 <주말경쟁력을 높여라>와 <부자의 생각과 빈자의 생각>을 연달아 읽으며 공병호 작가의 현실성에 박수를 보냈고, 일요일은 아침이 없고 점심부터 시작하는 나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주말 경쟁력을 반성했었다. 그런데, 그 후부터 그의 책에서는 신선함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최근의 읽은 그의 책들 <벽을 넘는 기술> <대한민국의 성장통> <미래 인재의 조건> <10년후 한국> <서른셋 태봉씨 출세를 향해 뛰다>를 거치며 공병호작가의 패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 영어 공부를 해라.
2.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라.
3. 꾸준히 다른 곳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그 일에 집중해라.
4.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5.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를 준비해라.

한 번이면 그렇지 하면서 끄덕였을 말들이 몇 번씩 반복되면서 이제는 그의 목소리에 둔감해지고 이제는 별로 감흥도 오지 않는다. 마치 나에게 잘되라고 하는 잔소리지만 자꾸 들으면 신경질 나는 것처럼.
결국 잔소리에 폭발한 나는 외친다.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누가 좋은 소리 못하나.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결과 말고, 뻔한 말 말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길을 가르쳐 달라고!

물론 모든 자기개발 작가들이 길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성공으로 향하는 길은 정해진 루트가 없으며, 사람들에 따라서 도달하는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공을 자기 노력 없이 족집게 과외 받듯이 이루려는 내 자신이 잘못된 것이다.

나는 이제 자기개발 서적은 읽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공 하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자기 개발 서적을 읽으면서 그 시간을 버리는 것 보다는 차라리, 어디 가서 경험하고 실컷 깨지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고 느끼는 편이 훨씬 낳겠다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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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온 2010-12-17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터인가 공병호라는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공병호라는 작가에서 식상함을 느끼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공병호라는 작가가 나에게는 의미 없는 작가가 되어 버렸다." 참 맛깔나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느껴볼 일인데 그걸 표현하는게 이렇게 한문장에 될줄은 몰랐습니다.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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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마메, 그리고 덴고의 사랑은 세상의 눈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초등학교 때 손만 한 번 잡았을 뿐인 아오마메와 덴고, 그런데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서로에 대한 체온은 서른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오마네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킬러, 그리고 덴고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왠지 사회와는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수학 강사 겸 소설가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오마메가 고속도로에서 비상 출구를 통하며 1Q84라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시작된다. 달이 두 개인 새로운 세상, 그리고 덴고는 후카에리라는 여고생이 쓴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의 고스트라이더로 새로운 세상에 관여하게 된다.
공기번데기는 리틀피플이라는 예언자쯤 되는 종족들이 공기에서 실을 추출하여 만드는 것으로 도터를 생산한다. 도터는 마더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도터가 탄생되었다는 증거로 달이 2개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1Q84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다 도터를 가진 존재란 말인가?
후카에리가 쓰고 덴고가 수정한 공기번데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덴고는 후카에리가 거대한 종교 집단인 선구 리더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오마메는 미성년자를 성폭했다는 이유로 선구의 리더를 죽이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호텔에서 만난 아오마메와 선구의 리더, 그런데 선구의 리더는 아오마메에게 자기의 목숨을 끊어 달라고 요청한다. 리더는 리틀피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그만큼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아오마메는 선구 리더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덴고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 마음 속에 가득해진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덴고를 만나기 위해 살기로 한다. 덴고는 선구의 리더가 죽던 밤, 후카에리와 종교의식 같은 성행위를 한다.
그것은 흥분에 취해 한 쾌락의 행위가 아니라,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숭고한 행위였다.
그리고 아오마메는 임신을 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오마메는 덴고의 아이라는 확신을 가진다. 후카에리가 아오마메와 덴고를 이어준 것이다.
그 시각 선구에서는 리더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오마메를 쫓기 시작한다. 우시카와라는 자가 그 추격자의 역할을 맡았다. 지지리도 못생기고 재수도 없는 사나이 우시카와. 그런데 그는 역설적이게도 아오마메에게 덴고의 위치를 가르쳐주고, 다마루의 일격을 받아 운명을 달리한다.
그렇게 만나게 된 아오마메와 덴고는 서로의 손을 잡고 아오마메의 추리대로 처음 1Q84로 연결된 통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문을 열었을 때, 아오마메와 덴고는 1Q84를 떠나 새로운 세상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달이 한 개로 보이는 호텔에서 뜨거운 사랑을 확인한다.

■ 나에게
이 세상이 전부일까? 1Q84를 읽으며 뇌리를 스친 질문이다. 이 세상 말고도 또 다른 세상이 그리고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 세상마다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통로가 존재한다.
아오마메는 우연히 그 통로를 지나치게 되었고 다른 세상으로 이른바 포털이라는 장치처럼 옮겨졌다. 1Q84라는 세상은 리틀피플이라는 예지자가 존재한다. 그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리시버라는 존재를 통해 전한다. 공기번데기를 통해 마더는 도터라는 존재를 복제한다.
나와 또 다른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니 데쟈뷰에 의한면 우리는 영원히 만나서는 안된다. 죽음을 부르기 때문에.. 그런데 다른 세상에 존재한다면, 나와는 다른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면 그런데 가끔씩은 텔레파시 같은 것을 통해서 나에게 다른 세상의 느낌을 전달해 준다면 그것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기시감이 아닐까? 언젠가 봤을 법한 인물, 언제가 와 봤던 곳이라는 생각, 이것은 어쩜 또 다른 나인 도터가 먼저 그러한 경험을 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은 내가 마더인지 도터인지 확신은 없다.
무라카미는 이 1Q84라는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단순하게 보자면 이 책은 판타지 러브 스토리이며, 선구라는 종교 집단과 아오마메라는 킬러 사이에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액션이 녹아 들어 있고, 덴고라는 청년이 여자 등장인물들과 벌이는 애로 장르가 교묘히 배치된 종합 소설이다. 그런데 복잡하게 보자면 이 책은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언급한 종교 소설이며, 마더와 도터라는 체세포 복사와 같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소설이며, 성폭행에 신음하는 여성들을 대변하는 사회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나는 33살의 회사원으로 월급날을 기다리며 보너스를 기다리며 하루 하루 회사에서 버티기를 하고 있다. 살아가는 것에 재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냥 하루 하루를 너무 쉽게 버리고 있지는 않은 지 걱정스럽다. 그런데 문뜩 올려다본 하늘에 달이 2개라면 어떤 기분일까? 새로운 세상에 떨어진 기분이겠지. 그리고 하루 하루가 숨가쁘겠지.
오늘부터라도 마음 속에 달을 하나 더 그려 넣어야겠다. 그리고 마치 새로운 미지의 세상에 살아가는 감정을 가져봐야겠다.

■유빈에게.. .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은 긴 스토리의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라고 할까.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넘나드는 무라카미라는 작가의 능력에 매료되었던 증거겠지. 2000페이지에 가까운 글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 만으로도 무라카미라는 작가는 위대한 작가라는 생각이야.
아오마메와 덴고의 세상을 초월한 로맨스, 쫓는 자 우시카와와 쫓기는 자 덴고와 아오마메의 숨가픈 추격, 모래시계의 이정재처럼 아오마메를 뒤에서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다마루, 난 유빈이 다마루 같은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어. (아, 게이인 점은 빼도록 하자) 듬직하고 믿음직스런 남자. 덴고는 솔직히 난 별로야. 지금 우리세대 젊은이들 같아. 개인적인 생활을 좋아하고, 그냥 그냥 하루하루 보내는 사람. 그런 사람보다는 난 다마루처럼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승화시킨 묵직한 남자가 더 멋있더라.
난, 이 소설을 읽고서 잠시 벗어나 두 가지에 대해서 생각했어. 하나는 이 세상 말고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 1Q84는 달이 두 개인 세상이었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달이 세 개인 세상도 있을 수 있고 달이 네 개인 세상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 그러니 생각의 폭을 넓혀야겠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고.
어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다음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시작이라는 생각을 했어. 그것은 불교의 윤회 사상과 조금 닮은 구석이 있네.
다른 하나는 내가 유일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마더와 도터처럼 나와 똑같은 존재가 아님 닮은 존재가 다른 세상에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도플갱어 이론에서는 나와 똑같은 존재를 만나면 파멸로 치닫고 마는 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면 괜찮겠지?
그런데 가끔씩은 나와 나의 분신과 텔레파시처럼 뭔가 통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음 좋겠어. 아마도 이야기의 내용은 나의 미래일 수도 있고 나의 과거일 수도 있겠지.

상류에서 본 계곡물이 하류에 도달했을 때 이 물이 아까 상류에서 봤던 물일까? 아님 새로운 물일까? 대답하기 어렵지…마찬가지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인지 아님 새로운 나인지 답하기도 어렵겠지.

그래서 누군가는 오늘의 나는 죽었다라고 말을 했나 봐. 유빈이가 이러한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려면 아직도 먼 훗날의 일이겠지. 어쩜 유빈이 이러한 질문에 고민을 할 때쯤이면 아빠는 너무 기성세대가 되어 쓸데 없는 걱정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다그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아빠의 목 뒤를 손톱으로 콕 찍어다오. 아오마메가 필살기를 구사하듯. 그래서 두터운 껍데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난 너에게 마더와 도터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주고 싶다. 마더는 너의 본성이고 도터는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 낸 또 다른 나의 모습이라고. 일본인들은 혼네와 다테마에라고 하지. 지금의 너의 모습은 마더의 모습뿐이야. 그 해맑은 웃음과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입을 삐죽거리는 것 모두 너의 본성인 것이지. 그런데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껍데기를 만들어가. 리틀피플이 만드는 공기번데기처럼 자기 스스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들어가, 그 안에는 사회적인 관념과 주위 사람의 바램과 욕심과 탐욕과 자존심 등이 섞여 들어가지. 그리고 결국에는 어떤 모습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었던가 혼란스러워 하지.

내가 딱 그래. 나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에게 부끄럽지만 말할 수가 없어. 어렸을 때는 과학자가 되어 로보트를 만들겠다던지,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고쳐주겠다던지, 그런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있는 데.. 지금은 무엇이 되고 싶다는 뚜렷한 목표가 없어.
단지 하루하루 회사에 출근해서 월급날을 기다리면 살아가고 있어. 너에게 아빠라는 존재이기에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런데 바보 같은 아빠는 아직 말도 못하는 너에게 매일매일 속삭인다.
<유빈이는 꼭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세상의 눈치 보지 말고, 돈에 굴하지 말고, 명예에 굴하지 말고 너가 하고 싶은 것, 너가 웃을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성인의 말에 자기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유빈이는 남이 아니니 괜찮을 거라는 엉뚱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유빈아. 아오마메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덴고, 어서 나를 찾아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찾기 전에.."
유빈이도 언젠가 자라서 남자를 만나게 되면 꼭 이런 심정을 가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어. 그냥 잘 생기고 능력 있어 보이는 남자 말고 아오마메가 세상을 초월해가면서 만나고 싶었던 그런 영혼의 떨림을 주는 남자를 말이야.
그런데 벌써 아빠는 두렵다. 유빈이가 언젠가는 나 말고 다른 남자를 인생의 전부로 생각할 것이라는 사실에... 그것이 아빠의 숙명이지만…

<워크아웃 판결문>
IQ84는 우선 재미있었다. 3권이나 되는 긴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읽을 수 있었으며, 3권은 예약주문을 했을 정도로 나를 조바심 나게 했다.
하지만, 책이 막을 내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IQ 84의 울림은 지속되지 않았다.
감동의 여운이 약했고,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고, 유빈에게 꼭 권할 만한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IQ 84는 중고 매각을 처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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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 5 (개정판) - 자금조달과 성장의 비밀 천재가 된 홍대리
손봉석 지음 / 다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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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 천재가 된 홍대리

홍대리는 언제부터인가 공부하는 직장인들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회계와 일본어, 컴퓨터를 넘나들며 천재가 되어 가는 홍대리를 닮아야겠다는 욕심에 회계 천재 홍대리라는 책을 샀다.
회계라는 어려운 학문은 돈을 만지는 경리, 재무 팀에서나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장인이 되어 보니 회계에 대한 지식이 다방면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현재 나는 구매팀에 있지만, 회계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거래 업체 선정시 재무제표 분석도 해야 하고, 원가 분석을 할 때는 고정비, 변동비 등 회계 용어를 써야 상사가 보고서에 토를 달지 않는다.
지출결의를 쓸 때면 수선비 비용으로 할 것인지, 자본적 지출 항목으로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할 때에도 기술적 분석은 모른다고 해도 최소한 손익 계산서, 재무제표는 봐야 묻지마 투자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경제적인 생활을 하는 데 필수적인 회계인데 나는 아직 회계라는 것에 대해 원초적으로 알레르기가 생기고 차변은 괜찮은 데, 대변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 엉뚱하게 화장실이 생각난다. 그래서 회계에 대해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아니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그럴 능력도 안 된다.

회계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 보니, 특정의 경제적 실체에 관하여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는 데 유용한 재무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 또는 체계라고 되어있다. 설상가상으로 더욱 어렵다.
나는 회계를 단순히 회사랑 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리가 미국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써야 하고, 컴퓨터랑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자바, 비쥬얼, C++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사라는 무생물체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회계라는 언어라고 생각한다.
구매 업체 선정을 할 때의 이야기를 해보면, A와 B라는 업체가 있는 데, 물건에 대한 단가는 동일하다. 그런데 한 회사는 빛이 많아 금방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생겼고, 다른 회사는 빛이 없고 안정적이다. 구매업무에서는 값싼 자재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정적이라는 말은 회사의 영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회계언어를 모른다면 이런 대화가 될 것이다.
나 : 사장님네 회사 돈 많아요? 부도 나는 거 아니죠
A사 사장 : 에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우리 회사 돈 많아요. 걱정 마세요.

나 : 사장님네 회사 돈 많아요? 부도 나는 거 아니죠
B사 사장 : 남의 돈 안 쓰는 회사가 어디 있어요. 그런데 무너질 정도는 아니니 믿어주세요.

그런데, 회계 언어를 안다면 이런 대화가 될 것이다.
“사장님네 회사 부채 비율이 얼마나 되시죠?”
“저희 회사의 부채 비율은 50%로 안정적인 재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회계를 안다는 것은 학생과 직장인을 구별하게 한다. 회계 언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좀 있어 보인다. 회계는 모든 것을 숫자로 치환한다. 그래서 그 사이에 주관적인 생각이 개입되지 않게 보호막을 친다.

앞의 A와 B사의 사장들의 경우를 계속 대입해 보면
A사 사장은 돈이 많다고 했고, B사 사장은 빚이 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구나 A사가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사장님께 올리는 업체 선정 사유에 A사가 돈이 많다고 함.. 이렇게 쓸 수는 없다..
회계 언어를 써서 이렇게 쓴다면 사장은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
“A사의 부채비율이 50% B사의 부채비율이 70%로 둘 다 건전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A사가 B사 보다 안정적임.”

회계는 항상 숫자로 이야기하며, 1원의 차이를 용납하지 않으며, 자산 = 부채+자본 이라는 대전제하에 차변, 대변으로 회사의 모든 시시콜콜한 일들을 규격화한다.
그래서 회계를 좋아하는 사람을 대해 냉정하고, 창의력이 없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깐깐한 사람이라고 매도한다.
하지만 회사라는 것이 철저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정의를 내리게 되자 회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수익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냉정하게 추구하며, 딱 부러지게 숫자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사랑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회사에게 사랑 받고 싶기 때문에 회계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해본다.
“회계는 분명 어려운 녀석이지만, 회계라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면, 회사와 더욱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워크아웃 판결문>
파인애플의 까칠까칠한 껍질을 벗기고, 먹지 좋게 잘라 놓은 것처럼 회계 천재 홍대리는 어려운 회계를 재미있고 읽기 쉽게 엮은 책이다.
하지만., 내가 정한 기준 5가지 중 어느 하나의 항목에도 부합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회계 천재 홍대리는 중고 판매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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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위저드 베이커리>

가족의 끊을 잃어버린 주인공 나는 가족과의 식사가 불편하여 빵을 매일 사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단절된 지 오래고, 새 엄마인 배선생님은 나에 대해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꾸역꾸역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배선생님의 딸인 무희에게 이상한 징조가 발생한다. 팬티에 피가 묻은 것을 배선생이 발견한 것이다. 배선생은 무희에게 누가 그랬냐고 다그쳤고 처음에는 영어학원 강사라고 했다가 법정을 오고가며 고초을 겪은 무희는 마음을 바꿔 만만한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살얼음이 탁하고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가뜩이나 눈에 가시였던 나를 배선생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급기야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았으나 아버지는 타인이었다. 더 이상 가족이라는 구성원으로 살아갈 의미가 없어진 순간, 나는 배선생을 밀치고 집을 떠나 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발길이 멈춘 곳은 위저드 베이커리. 범상치 않은 인상의 지점장과 청순한 여종업원이 일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 나를 점장은 숨겨 주었다. 빵을 굽는 오븐이 있는 곳으로.. 오븐 속으로 점점 걸어간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곳은 바로 마법사가 살고 있는 공간, 위저드 베이커리의 본질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청순한 여종업원이 원래는 파랑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낮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저녁이면 파랑새가 되어 이 방에 머무는 마법에 걸린 새였다. 괴팍한 점장은 나에게 잠시 숨을 돌리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파랑새는 그 예쁜 모습만큼이나 예쁜 마음으로 나를 헤아려 점장에게 내가 있고 싶을 때까지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준다. 그렇게 나와 파랑새와 위저드 베이커리의 마법사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나의 기억 속에 엄마라는 존재는 나를 청량리 역에 버린 사람, 그리고 내 앞에서 우울증 약을 과다 복용하고 스스로 목을 맨 모진 엄마였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청량리 역에서 버림 받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경찰서로 넘겨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를 꼭 안아 주었던 엄마의 품이 따스했다는 기억이 더욱 강하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점장은 마법사이거나 아니면 사이비 교주 같은 사람이었다. 짝사랑을 이루어주는 쿠키를 만들고,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골탕먹이는 쿠키를 만들고, 증오하는 사람을 닮은 부두 인형 같은 빵도 만든다. 그런데 효과가 있기는 한 가보다. 인터넷 쇼핑몰에 주문이 꾸준히 들어오는 것을 봐서는..
그리고 점장은 노련해서 남용하면 효과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헤칠 수 도 있다고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말이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친구를 골탕 먹이려다 자살에 이르게 만든 아이나,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짝사랑을 이루어주는 쿠키를 먹였는데 그 사람이 스토커가 되었고, 결국에는 방화범이 되어 짝사랑을 이루어 달라고 쿠키를 건넸던 여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으로 봐서는 말이다.
나는 위저드 베이커리에 머물며 사람들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존재이며,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배선생이 나를 닮은 부두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접수한다.
뭐, 그렇게 섭섭하지는 않다. 섭섭한 것은 점장이 너무 열심히 그리고 너무 섬세하게 나를 닮은 부두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점장도 힘든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15일에 하루 잠에 드는 데, 그 순간 그를 증오하는 잠의 마귀들이 그를 덮치는 것이다. 이유는 점장이 만드는 잠잘 때 잠의 마귀를 막아주는 빵 때문에 자신들이 괴롭힐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이유. 한 마디로 즐거움이 줄어들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단 하루도 편히 잠자지 못하는 점장의 모습을 보면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래서 마귀에서 점장대신 나를 괴롭히라고 호기롭게 말한다. 말과 실천은 하늘과 땅 차이인 법, 나는 죽음을 경험하다 깨어난다. 그런 나에게 점장은 고마워하기 보다는 심하게 질책한다. 죽고 싶냐고!!
그런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따뜻함을 느낀다. 그는 나를 걱정한 것이다. 내가 죽을까 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모습에 나는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가족에게 받아야 하는 이런 감정을 왜 난 괴팍한 점장에게 느끼는 것일까...

점장이 만드는 최고의 메뉴는 타임 리와인더라는 시간을 되돌리는 쿠키다.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는 그 쿠키는 점장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던 녀석이다.
한참 잘나가던 점장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는 오만함으로 한 사람을 살렸는데 그 살아난 사람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을 헤치고 자살한 것이다. 점장은 그 충격으로 이 쿠키를 만드는 것을 주저하고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붙여 놓았다. 리와인더 쿠키에는 세상의 균형을 깨트리는 위험이 있다. 그리고 슬픈 이야기지만 시간을 되돌렸을 때 그 사람이 예전의 후회를 기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사랑하는 아기를 잃은 부모가 시간을 되돌려 아기와 이별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지만, 막상 시간을 되돌려도 그들은 그러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기를 살리기 위해 병원에서 전전긍긍하다 다시 똑같은 이별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만남은 없듯이, 위저드 베이커리와의 이별의 시간이 다가 오기 시작했다. 자기의 탐욕으로 부메랑을 맞은 고객이 위저드 베이커리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점장은 쇼핑몰을 폐쇄하고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막상 점장이 나에게 돌아가라고 하자 괜히 서글픔이 느껴졌다. 점장은 나에게 배선생이 주문한 부두 인형을 건넸다.
그 순간 경찰이 위저드 베이커리에 난입한다. 일촉즉발의 순간, 점장은 마법을 부려 경찰들을 멈춰버리고 나에게 부두 인형과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던져준다. 그리고 그것이 위저드 베이커리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집으로 쫓기듯 돌아온 나는 눈이 휘둥그래지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것은 아버지랑 무희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배선생에게 시달렸을 때 한발 뒤로 물러서 그냥 관망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무희는 왜? 매력 없는 아버지와 그런 짓을 하는 것일까? 나와 눈이 마주친 무희는 얼어 붙은 얼굴로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렸고 그 순간.. 배선생이 나타났다. 배선생은 눈이 뒤집혀 아버지에게 (사실 이런 아버지는 아버지라고 부를 가치가 없을 것 같다.) 온갖 욕과 물건을 던졌고 그 중 하나가 아버지의 머리에 맞아 피가 주르륵 흘렀다. 나는 그냥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배선생의 불똥이 나에게로 튀어 배선생이 나에게 달려 들었을 때, 몸싸움 와중에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만다. 자 이제 선택의 순간이다. 타임 리와인더 쿠키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 1 타임 리와인더 쿠기를 먹다.
왠지 아버지가 재혼한다고 보여주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배선생이라는 사람인데, 왠지 그냥 좋지 않은 기분이 든다. 할머니는 나에게 어린 것이 왜 어른들의 일에 간섭하냐고 짜증을 내시지만 그래도 싫은 것은 싫다. 그리고 웬일인지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의견을 들어준다. 그래서 배선생은 나의 인생에 엮이지 않게 된다. 좀 미안한 것은 그 후 아버지에게 배선생만큼 재혼 이야기가 잘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하긴 아버지는 혼자 사는 것이 세상 평화에 기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 데 파랑 옷을 입은 청순한 여성이 나에게 반갑게 손을 흔든다. 설마 나에게 그런 것일까? 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나 밖에 없다.
해맑은 웃음으로 나에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그녀..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이다.


선택 2 타임 리와인더를 먹지 않다.
아버지는 파렴치한 아버지가 되어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된다. 당연한 결과지만 구속..
그리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피를 받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학교를 옮기고 최대한 조용히 살아가게 된다.
물론 배선생은 아버지와 이혼했고 정신적인 피해 보상으로 아버지의 재산을 다 가져갔다.
다행히 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역시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여성에게서 쿠키를 선물로 받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쿠키는 짝사랑하는 사람을 휘어잡는 쿠키!!
메이커는 위저드 베이커리다. 나는 그 여성에게 위저드 베이커리의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 힘차게 위저드 베이커리를 향해 달린다. 파랑새와 마법사 점장의 따스함이 있는 그 곳으로 ...

■ 나에게
까칠한 위저드 베이커리의 점장과 청초롬한 파랑새가 없었다면 이 책은 가정에 동화되지 못하는 아버지와 아동학대를 하는 새엄마와 그리고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의 엄마, 그리고 거기에 대한 충격으로 말을 더듬는 나라는 등장하는 아주 우울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특별한 존재가 우울한 이야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고, 까칠하지만 따듯함이 느껴지는 마법사 점장에 의해 마치 헤리포터를 보는 듯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

그런데 찝찝한 것은 피를 나눈 가족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왜 근친 상간일까?
나의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지만 그리고 정이 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물론, 근친상간은 제외)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면 자식들에게 냉대받고 아내에게 무시당하고, 그런데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것은 가족일지도 모른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지상 최대의 의무를 우리는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 아버지에게 떠맡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우리의 엄마들도 힘든 것은 많다. 아이들의 양육을 모조리 떠맡고,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가사노동과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식들도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부모가 서로 언성을 높여 싸울 때, 자식들은 중간에 끼어 발만 동동 구른다. 그리고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의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커다란 스트레스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모두 쉬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서로서로 이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남의 일은 항상 쉽게 보이고 자기의 일은 항상 어렵게 보이는 법이며, 원래 가까운 사람에게 제일 못하는 법이다.

■유빈에게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데, 난 너에게 이 책을 쉽게 권할 수 가 없다.
첫 번째 망설여지는 것은 무희와 아버지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의 외도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괴로워하다 청량리 역에 주인공 "나"를 버리고 결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불운한 친 엄마 때문에, 그리고 나를 괴롭히는 새엄마의 잔인함 때문에.
난 처음에는 청량리 역에 주인공 "나"를 버린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랑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버린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치 예전 공산 국가 동독에서 아이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서독으로 아이를 밀입국 시켰던 부모들처럼 말이다.
어떤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그런데 난 너에게 위저드 베이커리 점장과 파랑새가 있기에 읽어 볼만한 소설이라고는 이야기하고 싶다.
까칠한 성격이지만 그 안에는 누구보다 따뜻함과 다정스러움을 가진 마법사 점장.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착하고 예쁘고 청순한 아이 파랑새

점장과 파랑새는 내 마음 속의 절대자이며, 영원한 후원자라고 생각한다.
가끔 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저 얄미운 사람이 잘 안됐음 좋겠다. 짝사랑하는 멋진 사람이 나만 바라봤으면 좋겠다.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린 시절로 돌아갔으면...
점장은 이러한 나의 마음을 쿠키와 빵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절대자 같은 존재다.
물론 지나친 탐욕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깊은 함정에 빠지게 만든다는 경고 메시지는 잊지 않겠지.
그런데 마법의 쿠키를 사용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은 없었다. 모두 비극적인 결말과 괴로움을 겪었다. 자기가 원하는 결과는 스스로 노력해서 얻어야지 꼼수를 통해서 이루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것은 타임 리와인더라는 과자였다.
나 역시 <타임머신을 타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을 가끔 하기 때문이다.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공부 진짜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텐데
1년 전으로 돌아가도 더 열심히 살 텐데
일주일 전으로만 돌아가도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우린 매일매일 아쉬움과 후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저드베이커리 점장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가도 지금 가졌던 후회와 아쉬움을 기억하지 못하면 행동의 변화는 없다고"
난 그의 말에 박수를 보낸다.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아기일 때는 잘 먹고 잘 놀아야 하고, 학생일 때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학생일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 일할 곳이 없고 그 결과 사회에서 낙오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른일 때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은 노인이 되어서 돈 없고, 병들어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이렇게 외친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열심히 살 텐데…

단언컨대, 예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지금을 불평하며 살아갈 거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금의 지식과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가도 효과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헛된 망상은 그만두고, 그 아까운 시간에 오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늘을 후회 없이 살면 내일이 되었을 때 어제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은 가지지 않게 될 테니까.
물론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회사에서 시달릴 때 마다, 유빈이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다.
"지금 유빈이 나이로 돌아가면 정말 걱정 없이 살 텐데”라고

■ 워크아웃 판결문
위저드베이커리를 살까 말까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책의 표지를 보면 섬세한 동화책 같은 분위기인데, 분명 이런 류의 소설은 한 번 읽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쉽게 구매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형 서점에 가서 책을 다 읽고 오는 궁색한 짓은 싫었다.
이런 소설은 아무도 없는 밤에 홀로 일어나 고요한 정적 소리를 들으며 읽던지, 아니면 나른한 오후에 클래식의 <마법의 성>을 들으면서 읽는 편이 훨씬 풍요롭기 때문이다.
작가가 깔아 놓은 이야기 길을 쉽게 따라가다 보니, 순식간에 정상을 정복하고 말았다.
하지만, 역시나 그 똑 같은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위저드베이커리는 깨끗이 포장되어 새로운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내 품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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