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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타쿠 히데오의 소설에는 해악이 묻어있다. 심각한 이야기를 웃음과 재치로 승화시키는 그에게서 인생의 내공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거대 신문사의 총수이며, 명문 야구단의 구단주로서 엄청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이지만 가진 것이 너무 많기에 죽음이 두려운 미쓰오.
IT산업의 기린아로 거대한 부를 일구었지만, 너무 합리적으로 자신을 채찍질 하다 보니 히라가나까지 쓸 수 없게 되어 버린 안퐁맨 다카아키
화려한 TV속의 주인공으로 안티에이징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먹은 것을 운동으로 다 소진해야만 심리적 안정을 찾는 카리스마 여배우 가오루
거대한 건설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면장이 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싸우는 센주시마의 면장 선거
모든 것을 꾸며낸 이야기라고 평가절하하기에는 왠지 마음 한 구석에서 이 이야기 신문 구석에서 본듯한 뉴스인데… 라는 거부감이 밀려온다.
특히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하는 이라부의 생각에서는 아, 그래서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그토록 실천하시려고 했구나라는
숭고한 깨달음까지 얻게 되었다.
나의 고민도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니, 맞아. 라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럼 욕심을 버리면 간단하네. 라는 말을 건네보니, 나라는 녀석은 그것은 아니지라는 대답을 한다. 그래서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은 범인(凡人)의 경지를 벗어나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오타쿠 히데오는 인간적인 작가다. 무소유를 하는 것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속 시원하게 해주니까 말이다.
무소유를 부르짖지만,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새 모델로 교체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솟아난다. 통화음질에도 이상 없고, 문자 수신에도 문제 없지만, 그래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가지고 싶다.
핸드폰, 언제부터인가 나는 전화번호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적인 논점에서 말하자면,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모든 것이 저장되어 있고 간단하게 버튼 몇 번 누르면 전화번호를 찾아 낼 수 있기에 일부러 경제적 이익이 되지도 않는 전화번호를 귀찮게 외울 필요가 없다. 차라리 그 시간과 노력으로 금리라던가, 환율 숫자, 삼성전자의 당기 순이익을 외우는 것이 효율적이고 현대인 같아 보인다. 안퐁맨이 딱 이런 생각으로 무장된 실력자다.
최근 유행하는 병중에 디지털 치매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의 범람으로 우리는 암기라는 노동에서 해방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더 빨리, 더 많이, 더 정확히 살아가는 게 행복한 일일까? 직장인에게 스테그 플레이션이 발생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의 힘으로 인해 일은 더 많아지는 데 비해, 인력에 대한 가치는 떨어져 월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숨가쁘게 살아가는 데, 생활은 더 팍팍해 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가치, 실리, 스피드를 부르짖다가 안퐁맨은 히라가나를 잊어버렸다. 어쩌면 안퐁맨은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자신의 살아가는 의미까지 잊어버리고 성공을 향해 달리는 경주마와 같은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왠지 내 주위에 승진과 부자가 되기 위해 목숨 걸고 달리는 사람들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도 제발 이라부의 손길이 미치기를
카리스마 연예인, 그들은 마치 호수 위의 백조 같다. 우아한 겉모습과 달리 물 아래에서는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가오루도 안티에이징으로 구축된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살이 찌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사회적으로 보이는 나와 개인적인 나의 괴리라고 할까?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사회적인 나를 만들게 된다. 모두 다 유능하고, 유머도 있으며, 지적이고, 깔끔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삶이 피곤하다. 돈이 없어 집에 걸어가야 할 지경이 되더라도 절대 없는 티를 내서는 안되고, 아는 게 쥐뿔 없어도 최소한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은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겉으로 보이는 나와 개인적으로 원하는 나의 괴리감을 항상 끌어 안고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아파하는 것은 아닐까?
편해지기 위해서는? 간단하다. 법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살면 된다.
이라부가 가오루가 처방한 방법처럼 말이다. 먹고 싶으면 마음껏 먹으세요. 그리고 살찌면 되지요!
면장선거는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선거철마다 나오는 신문의 뉴스와 너무 닮았다. 정경유착, 뇌물 선거, 상대방 비방, 핵심 인물 포섭. 이러한 기법들은 한국에 사는 국민들이라면 너무 친숙한 기법들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마약과 같다고 한다. 한 번 빠져들면 천국을 보게 되고 절대로 현실로 회귀할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하긴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 평범한 소시민이 된다면 그것은 치욕과도 같은 느낌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된다.
우리의 이라부는 솔로몬의 해법을 제시한다. 장대에 꽂힌 깃발 빼앗기 게임. 얼마나 공정한 게임인가.
인간은 맨 몸으로 경쟁하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이다. 그래서 권투가 가장 인간다운 스포츠라고 했나 보다.
그런데 설마 우리의 국회위원들도 면장선거를 읽었나? 왜 맨날 국회의사당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 양당이 몸싸움을 하는 지..
우리는 다양한 고민을 마음 속에 꽉꽉 채워가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고민이 넘쳐나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병이 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아프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간단하다. 마음이 시키는 데로,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살아가면 된다. 정말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