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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로맹 가리에 대한 사랑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그 후로 나는 국내에 출간된 그의 소설을 꼬박꼬박 찾아 읽었다. 그리고 막, '유럽의 교육'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마지막으로 만나는 소설이, 그의 데뷔작 '유럽의 교육'이다. 어쩌면 나는 일부러 남겨두었는지 모르겠다. 로맹 가리 소설의 그 시작을,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으로 미뤄두고 싶은 그런 마음이랄까.
‘유럽의 교육’은2 차 세계대전 당시 활동한 폴란드 빨치산을 다룬 소설이다. 독일이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누군가는 절망했고, 누군가는 동조했고, 누군가는 자살했고, 누군가는 도망쳤다. 그리고 누군가, 소년의 아버지는 독일군이 모여 있던 그 집에 간다. 그는 아들을 남겨두고 죽는다. 장렬한 전사였지만, 아들은 그것을 모른다. 홀로 남겨진 아들은 어떤 이끌림에 의해 빨치산들이 모여 있던 산으로 간다. 그는 그곳에서 아버지를 찾으려던 것일까. 모른다. 그는 점점 동화되어간다. 레지스탕스의 속으로.
‘유럽의 교육’은 소년의 시선을 빌려 독일군이 점령하는 세상을 이야기하지만, 단지 그것을 비판하는 소설이 아니다. 근본적인 것을 바라본다고 해야 할까.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해지는가, 를 향한 탐구라고 할까. 폴란드 빨치산과 독일 점령군을 넘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의 관계적인 것을 진지하면서도 세밀하게 살피는 것이다.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것, 그러니까, 왜 우리는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것인데,
문장이 힘차고 중심은 묵직했다. 도저히 첫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건 어떤가. 소년의 성장, 절망의 시대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의 노래와 이야기, 그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조금씩 변해가는 그 순간들… 어느 순간 나는, 아름답다, 고 느꼈다. 희열이라고 할까. 이 소설에서 로맹 가리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도, 그것이 굉장히 비루하고 절망적인 것임을 말하면서도,
기어코 절망에 굴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그렇게 하여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음을 역설하는데, 그 모든 것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나는 그때 이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다. 과연, 로맹 가리야, 라고. 과연, 그의 소설은 남달랐다.
데뷔작이라고 하면 어설프거나 치기 어린 모습이 느껴지곤 하는데, '유럽의 교육'에서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멋진 소설을 읽는구나, 라는 그 감정이 느껴질 뿐이다. 마지막으로 미뤄두기를 잘했다. 기대했던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감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