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한줄 총평:

쉽게 생각하면 한없이 허무하고,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여운이 남는 책.

추리 소설 제목 같지만, 결코 추리소설은 아닌 책.

 

추리 소설인가? 하고 읽기 시작하면 이 책은 한없이 허무하다.

'이제 스토리가 시작하려나' 하고 흥미 진진하게 몰입하기 시작하면 이내 스토리는 허무하게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당부하건데, 아니, 단언컨데, 이 소설을 추리 소설 장르로 규정 짓고 선택하는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떤 장르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너무 어렵다. 뭐 꼭 장르의 정의가 있어야하나? 살인자의 기억법은 작가 김영하만의 장르라고 해두자. 그래서 독특하고 신선하다.

 

일찍이 이 소설에 관한 추천글을 많이 접해왔지만,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아주 충동적으로 서점에 방문했다가 생각없이 집어 들었다. 몇페이지 읽어보니 추리소설 같았다. 장편소설이라 명명되어 있지만, 두어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얇은 두께였다. 그래, 머리도 식힐 겸....하는 기분으로 선택했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70대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은 처음이다. 책을 읽다보니 주인공이 치매에 걸린 70대 노인이란다. 첫장부터 더듬더듬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가 예사롭지 않다 여겼더니 역시나 였다. 신선했다. 왔다 갔다 하는 70대 노인의 기억 속에서 살인의 추억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여기까지는 정말 완벽한 추리 소설이었다. 자신의 수양딸이 사윗감으로 데려온 남자는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정의 내린 70대 노인의 복수극이 이제 시작되려나 보다!! 하는데 스토리는 어의없게 마무리되었다.  책장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 중간도 못 간 스토리 전개때문에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내가 빼먹고 읽지 않은 부분이라도 있는 걸까? 다시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에도 찜찜한 마무리 때문에 나는 책장을 거꾸로 넘기기 시작했다. 아니. 난 제대로 읽었다. 게다가 몰입해서 읽었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이 책은 원래 이렇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렇다. 원래 이렇게 허무한 것이다.

 

마치....속절 없는 인생사를 두고 내뱉는 우리들의 대사를 너무도 닮아있다.

 

"인생은 원래 이런거야. 원래 이렇게 허무한 거야...."

누구나 한번쯤은 내 뱉어 봤을 법한 대사. 알수없는 인생길에서 한번은 읊조렸을 그 대사.

 

그 대사를 이 책을 읽고 내뱉게 되었다.

이 책....철학서인가? 모르겠다. 뭐 장르를 꼭 규정지어야 하나....에잇.

 

책의 마지막은 반야심경의 한 구절로 마무리 되었다.

 

[그러므로 공(空)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중략)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실체가 없는 허상.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이 어쩌면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의적 기억속에서 공허하게 헤엄치고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이 책 '살인자의 기억법이'주는 가장 큰 공포일 것이다.

 

오랜만에 신선한 여운이 남는 책을 접한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